
[<사람과 산> 조태봉 작가] 많은 사람들은 트레킹을 풍경 감상이나 건강을 위해 즐긴다. 그러나 트레킹에는 그것들 이외에도 ‘순례’, ‘자연’, ‘사색’이라는 보물과도 같은 구원의 메세지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한 구원의 메시지들은 일상에서 지치고 경직되고 의기소침해진 우리들의 영혼을 구원해준다. 구원은, 사전적 의미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줌” 혹은 “인류를 죽음과 고통과 죄악에서 건져 내는 일”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러한 구원은 교회나 사찰 혹은 철학책에서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단지 풍경 구경이나 건강 삼아 걷는 트레킹에서 이러한 거창한 메세지를 얻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트레킹에서 이러한 메시지는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먹고 사는데 온 관심을 쏟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 메시지들이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의심했을 뿐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이 전부라는 사실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유수의 고산지대를 오른다.
그리고 지리산 종주, 백두대간 종주, 100대 명산을 걷는다. 이러한 구원의 메세지들은 어떤 원리로 트레킹에서 발생되는지, 저서 『트레 킹의 원리』를 중심으로 알아보자.
글로벌적 표현으로 산행, 종주 산행, 둘레길 걷기, 도보 여행, 등 세상의 모든 걷기 여행을 트레킹 혹은 하이킹이라 한다. 한국에서 트레킹 도중에 이러한 영혼적이거나 철학적 이야기를 한다면 그 내용이 아무리 그럴싸하더라도 비웃음을 살 가능성이 많다.
저번 회차 기고문에 인용한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 내용을 다시 가져와 보자. 2015년 9월 11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은 “장시간 노동으로 녹초가 된 한국인이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인기 있는 방법이 등산이다”라는 기사를 냈다.
“한국인들이 전쟁으로 피폐해져 빈곤에 찌든 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번영한 국가 중 하나로 만들기 위해 수십 년간 고생스럽게 일해 왔고, 그것이 몸에 배었고, 더 잘 되기 위해 기를 썼던 평일의 스위치를 주말 등산에서도 끄지 못한다.
그들은 산에 빨리 올라가고 빨리 내려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사실, 우리 한국인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이를 악물고 일을 했다.
그야말로 개발도상국이라는 형태에서 억척 같이 돈을 벌어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모범적인 나라가 된 셈이다.
이렇게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 당해야 하는 개발도상국에서는 ‘구원’이라는 돈과 별 관계가 없는, 아니 오히려 돈 버는데 장애가 될 수 있는 단어들은 일상생활에서 일종의 ‘금언’의 대상이 되었다.
그 단어는 교회, 사찰에서나 통용되는 말들이다. 빨리 올라가야 하고 빨리 내려가야 칭찬받는 우리 트레킹의 분위기에서 ‘구원’이라는 단어를 꺼냈다가는 바보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트레킹의 내용이나 원리를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이러한 구원의 메세지가 그 저변에 깔려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의 생활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이러한 트레킹의 구성 요소나 원리를 잘 몰랐기에 그것들이 트레킹과 무관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이 구원의 내용들은 알피니즘(alpinism)에서 말하고 있는 산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 대한 심미적인 태도와 유사 하다.
그러니 앞으로 체력이 다하는 날까지 트레킹을 하실 분들, 좀 더 높은 산에 오를 분들은 주의 깊게 살펴보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풍경 감상하기, 건강한 몸 다지기, 호연지기를 위해, 친구 직장동료들과 친목을 위해, 이것들은 트레킹의 대중적인 목적이나 의미다.
물론 이런 기본 상식이나 의미도 모르면서 산을 오르거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그저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풍경 구경이나 하다가 그곳에서 먹는 맛있는 음식만 생각 하며 걸을 가능성이 많다.
이런 행위는 트레킹에 어떤 의미를 두고 걷는다기보다는, 그저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친구따라 트레킹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트레킹 도중에 체력이 방전되어 걷는 내내 고생하거나, 트레킹 후 근육통으로 고생하여 트레킹과 단절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 시대에서 가장 많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 실존주의 철학의 거장, 마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1889~1976)는 현대사회를 잡담과 호기심 그리고 애매성으로 점철된 비본래적인 삶이라고 말했다(박찬국, 2020).
이와 상반되는 삶은, 자신의 존재를 의식함으로써 다른 존재(물질, 정신)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삶이라고 말했다.
위에서 거론한 트레킹의 구원적 체험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주변 사람들과의 잡담과 세상(자연)의 호기심만을 위해 걷는다면, 트레킹에 대한 애매한 인식으로 점철된 이른바 비본래적인 트레킹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비본래적인 트레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경치를 봐야 하는가.’보다는 ‘내가 자연과 이 세상과 어떻게 관계해야 하는가.’ 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치 구경 이외에도 자연 속에서 혹은 세상에서 걷는 의미를 마음에 새겨두는 것이 중요하다. 의미라는 단어는 목적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으며, 사물이나 현상들에 담겨있는 가치도 포함된다.
트레킹에서 발생하는 가치들중에 중요한 3가지 의미가 어떻게 발생되는지 살펴보자. 그 3가지 중요한 의미는 순례, 자연, 그리고 사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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