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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힐링트레킹 ] ② 트레킹과 구원의 메시지_트레킹에서 ‘순례’의 의미

장 불재 2026. 2. 14. 12:03

 

[<사람과 산>  조태봉  작가]       순례는 트레킹에서 고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종교 순례에서 시작되었다.

 

종교 순례는 종교적 신념이나 신앙을 위해 종교적 성지나 성인들의 거룩한 장소를 방문하는 여행을 의미하며, 그 중에는 머나먼 길을 걸으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장거리 순례길 즉 트레킹 방식의 순례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순례자는 체력적 부담과 환경적인 어려움, 그리고 자신과의 한계와 부딪히며, 신앙심을 고취하고 영적 경험을 쌓게 된다.

 

즉 속세의 관계에 얽혀 헤메이는 자신의 종교적 신앙심에서 구원의 길을 찾게 되는 것이다. 트레킹에는 그것이 종교적이든 그렇지 않든 순례의 요소가 담겨있다.

 

트레킹은 산업혁명의 발생과 함께 19세기 유럽에서 생겨났다. 태동기의 트레킹은 걷기클럽(walking club)이라는 형식으로 시작되었으며, 그 걷기는 주로 도시 근교의 전원지대를 장시간 걷는 ‘단체 트레킹’으로 진행 되었다.

 

그 때에도 순례는 트레커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1880년 영국에서 생겨난 최초의 걷기 여행클럽 ‘맨체스터 YMCA 방랑클럽(Manchester YMCA Rambling Club)’은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초원과 숲길 그리고 시골길을 끊임없이 방랑자들처럼 걸었다(레베카 솔닛, 2002a).

 

이렇게 장시간 동안 걷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시시각각으로 다양하게 관찰하려는 의지적 표현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어떤 의식의 변화를 꿈꾸는 순례의 의미가 숨겨져 있기도 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볼 때 최초의 걷기클럽 ‘맨체스터 YMCA 방랑클럽’에는 순례의 목적이 없었다. 그저 자연의 풍경을 즐기려는 의도만 보였다.

 

단지 이때부터 인간은 500만 년이나 지속되었던 걷는 이유에 대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 먹고 살기위해 이쪽에서 저쪽으로 걸은 것이 아니라 어떤 즐거움을 위해 장시간 걸은 것이다(조태봉 외, 2025a).

1884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숲속의 방랑자 클럽(The Forest Ramblers Club)’은 ‘맨체스터 YMCA 방랑클럽’과 유사한 걷기클럽이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그들의 걷는 즐거움 중에는 ‘걷기 좋은 소로, 좁고 걷기 좋은 길의 권리’에 대한 의식이 추가 되었다(리베카 솔닛, 2025b). 그 당시 영국 토지의 90%는 귀족들이나 거대 지주들의 사유지였다.

 

그런 까닭에 경치 좋은 야외에서 걸으면서 즐거움이나 자유를 만끽하려면 마음대로 걸을 수 있는 통행로를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들은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회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더불어 그 뜻하는 바를 보여주는 행사의 개념이 포함된 걷기 여행 즉, 트레킹을 시도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해결이 목적으로 추가된 걷기 여행에는 분명히 순례적 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모두를 위한 걷기였고, 장시간 오래도록 힘들게 걸어야 하는 순례길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례는 사회정의를 위한 순례였다. 이후에, 이러한 사회 정의에 관한 순례 정신이 포함된 걷기클럽은 영국을 비롯한 오스트리아, 독일,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서 유행처럼 생겨났다(조태봉 외, 2025b). 

 

그리고 걷기클럽의 멤버들은 그곳에서 소소하든 감동적이든 종교적 순례와도 같은 구원의 영혼과 만나고 있었다.

 

그것은 수천년 동안 넘지 못했던 불의에 대한 항거가 성공을 거두면서 맛보는 환의에 찬 감정이었고, 그것은 개인에게는 종교적 차원과도 같은 구원의 역할을 한 것이다.

GPS 기능이 대중화된 2000년대부터는, 그 획기적인 기능으로 하여금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아름답기도 한 자연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데 보다 자유로워졌으며, 트레킹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다양한 트레일의 도전이 가능해졌다.

 

GPS 기능이 포함된 트레킹 어플리케이션(APP)을 스마트폰에 탑재하고 야생 속에서의 길 찾기 기능이 자동화되면서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트레킹의 현대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조태봉 외, 2025c).

 

그러 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트레킹이라 하지만, 트레킹의 걷는 거리가 10km 이상이라고 정의할 때(그 이하는 산책) 그 10km 라는 거리라도 어떤 각오를 가지고 걸어야 하는 극복의 의미가 담긴 거리다.

 

왜냐하면 평상시에는 하루에 걷는 거리가 겨우 3km 정도(5-6천보) 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트레킹에 비해서 걷기 수월한 완전히 평이한 길이다.

 

그러나 현대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은 하루 종일 혹은 몇 날 몇 주 동안 계속 이어지는 장거리 트레킹을 선호하고 있다. 트레킹에는 기본적으로 그 거리가 짧든 길든 체력적 극복을 통한 순례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고갯길을 넘으며 힘에 부쳐 두 다리가 무거워질 때, 찬 바람에 얼굴과 손발이 에이는 오한이 저려 올 때, 그리고 이 고난들이 내가 아닌 다른 팀원들에게 일어날 때도, 우리는 이러한 어려움을 종착지로 가기 위한 당연한 현상으로 여기며, 서로가 하나의 공동 운명체로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여기에서 당연한 현상으로 여기는 것은, 어떠한 변수가 생기더라도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의무는 트레킹에서 가장 중요한 완주(完走)의 의미에서 비롯되며, 내가 원래 자연이기에 그 속에서 만나는 어떠한 작용을 모두 수용 가능하다는 초자연적인 태도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들은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의 ‘위버맨쉬(Übermensch:극복하는 자)’ 혹은 ‘아모르파티(amor fati:운명을 사랑하라)’ 라는 위대한 단어에서 비롯되는 긍정에 의한 극복의 의미다.

 

니체에 따르면 삶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힘들더라도 자신의 운명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고난과 어려움에 굴복하거나 체념하는 것과 같은 수동적인 삶의 태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니체가 말하는 위버맨쉬는 긍정에 의한 극복을 의미하며, ’아모르파티’ 즉 ‘운명애(運命愛)’는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고난과 어려움까지도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방식의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트레킹은 니체가 말하는 그 위버맨쉬와 아모르파티를 실험하고 경험하는 최적의 장소가 된다. 트레킹에서는 어떠한 극한 환경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조장하고, 그것을 견뎌내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다.

 

트레킹에서 순례의 의미는 그것이 종교적이든 아니면 나 자신을 위한 것이든, 황금만능주의와 기계적인 도구들로 인하여 황폐해진 현대인의 영혼을 구원한다.

 

트레킹은 나 자신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시험하면서, 세속에 물들어 땟국물에 찌들고 경직된 영혼을 한 차원 높고 올바른 위치에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인도한다.

 

다만 그 트레킹이 순례가 되려면 오직 풍경 찾는데만 머물지 말고, 나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긍정적으로 그 트레일을 완주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저 풍경 구경이나 맛있는 음식을 탐하면서 친 구들과 재미있게 놀 생각만 한다면, 순례의 의미는 더욱 축소되거나 아예 찾아보기 힘들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