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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산장 이야기] “백운산장과 백운의 혼은 한 뿌리”

장 불재 2016. 11. 21. 13:28



매년 ‘백운의 혼’ 추모제 여는 박순배 한넝쿨산악회장


백운의 혼을 설명하고 있는 한넝쿨산악회 박순배 회장.


북한산에 깃든 ‘백운의 혼’


북한산 백운산장 초입에는

 한국전쟁 때인 1950년 6월 28일,


 서울이 북한에 점령됐다는 소식을 듣고

 백운산장에서 자결한 두 명의 국군장병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백운의 혼’이 서 있다.


이 추모탑은 한넝쿨산악회(회장 박순배)의 전신,

 ‘홍지회(1956년 발족)’의 주도로 1959년에 세워졌다.


홍지회는

과거 국군 장교였던 강의식 소령(현재 90세)이 설립한

애국단체 ‘백운의숙’ 산하의 청년 모임이었다.


충혼탑이 세워진 이후로 홍지회는

 수유리에서 출발해 백운의 혼 앞에 꽃다발을 놓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헌화 등행경기’를 주최하는 등

 비정기적으로 추모 행사를 이어오다,


1973년 단체명칭을 지금의 한넝쿨산악회(초대회장 이수철)로 바꾼 후로는

 매년 현충일에 추모제를 지내오고 있다.


 한넝쿨산악회 창립 당해에 가입한 박순배 現 회장은

 입회 처음부터 백운의 혼 추모제 업무를 담당해 왔다.


“제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할 때 즈음,

산악회에 가입하게 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산에 다녔던 터라 백운의 혼과 관련돼

 1950년대에 활동했던 산악계 선배님들이 전하시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죠.


처음에 추모제 업무를 맡게 됐을 때는 얼떨떨했지만,

강의식 소령님과 저희 선배님들이


 어렵게 기반을 다져놓으신 행사인지라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진행했습니다.”


1973년 처음 시작된 백운의 혼 추모제는

 ‘선배님들의 뜻을 거르지 않겠다’는 한넝쿨산악회 회원들과


박 회장의 ‘고집스러운’ 집념 덕분에 지금까지 40년 넘게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물론 긴 세월동안 예산 문제를 비롯한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왜 없었겠냐마는 그때마다 회원들이 발 벗고 나섰다.


“10년 전쯤에는 충혼탑이 노후화돼서 보수공사를 해야 했어요.

적어도 시멘트 70포 정도를 날라야 하는데


인부를 고용하려 해도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타야 해서 다들 꺼리더군요.


결국 회원들이 각자 할당량을 짊어지고 올라갔죠.

 보수공사도 회원들이 함께 모여 직접 했어요.


그 모습을 본 당시 대산련 이인정 회장님이 ‘정말 대단하다’며

 ‘추모제를 같이 하자’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2006년부터는 대산련, 한국산악회,

산악동지회와 합동으로 추모제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의 우국충정이 깃든 백운의 혼은

그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에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등록됐다.


이후 2년간 6·25참전용사회가 백운의 혼 추모제에 참석했으며,

 최근에는 한국대학산학연맹, 한국여성산악회 등


주요 산악단체도 추가로 참석해 규모가 커져

이제는 산중에서 이뤄지는 가장 대표적인 추모 행사로 자리 잡게 됐다.



백운의 혼 추모제는 2006년부터 대한산악연맹, 한국산악회, 산악동지회와 공동으로 진행됐다.


 

산악인의 요람, 백운산장


지금까지 백운의 혼을 지켜온 이는

 한넝쿨산악회뿐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950년 백운산장에서

 두 국군장병이 자결했을 당시 이를 발견한 산장 주인장 이남수씨는

 재빨리 시신을 수습하고 우이동청년단에 이 사실을 알려 인근에 가매장했다.


이후 이들의 유골은 1953년 강의식 소령에 의해

우이동 천도교 회관 인근으로 안치됐다.


백운산장 초입에 충혼탑이 세워질 때도

 이남수씨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고,


 이후에도 그의 꾸준한 관리 덕분에

 오랜 시간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50~60년대에는 산장이 구조대 역할도 했어요.

당시에는 구조체계와 시설이 열악했으니까


비상 시 가장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산장에

 들것이나 각종 구조 장비를 보관해 놓은 거죠.


그러다 보니 당연히 산장지기도 구조대원이 됐던 거예요.

실제로 많은 사람을 살리기도 했죠.


 그런데 그 군인들이 산장에서 자결을 했으니

이남수 선배님이 얼마나 놀랐겠어요.


 그 책임감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관리를 해주신 거죠.”


이남수씨가 작고한 뒤에는

그의 아들 이영구(현재 85세)씨가 백운산장과


그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아

 한넝쿨산악회와 함께 백운의 혼 추모제 진행과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등록에 힘써왔다.


국가보훈처에도

 백운의 혼 관리자로 한넝쿨산악회 박순배 회장과

백운산장 이영구 주인장 두 명이 공식 기록돼 있다.



“그간 백운의 혼 관련 일들이 있을 때마다

 저 혼자 처리한 게 아녜요.


이영구 선배님이 옆에서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많이 감사하죠.


돌아가신 이남수 선배님도 그렇고,

사실 백운산장이 없었으면 백운의 혼도 없었다고 봐야죠.”


박 회장은 고마움을 전하면서도 걱정을 드러냈다.

내년 초면 백운산장이 국립공원 관리공단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1992년에 백운산장에 불이 나서 1997년에 재준공할 때

 공단과 20년 후 기부체납을 약속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공단으로 넘어간다는 것이 곧 산장의 철거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백운산장의 역할에는 분명 변화가 생기겠죠.


백운의 혼 문제를 떠나서 백운산장은 저희 선배님들은 물론

 모든 ‘산악인의 요람’과 같은 곳이잖아요.


 없어지면 안 됩니다.

백운의 혼과 백운산장의 뿌리는 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