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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트레킹 ㅣ 트레킹과 등산의 뜻과 차이점

장 불재 2025. 12. 4. 11:40

왜곡된 용어 선택과 한국 트레킹 문화

 

조태봉│대학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했으며 한국 최초의 트레킹 여행사를 23년간 운 영했다.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국내외 트레킹을 경험했고, 명 상에 심취하여 마음챙김명상국제지도자 Level 1(미국 브라운대학 명상지도자 등재) 자격을 취득했다. 2025년 집필한 『트레킹의 원리』는 서울대 이환종 명예교수와 조태 봉의 공저이며   트레킹에 관한 기술 인문 서적이다.

 

 

트레킹과 등산의 글로벌(global)적 정의

 

글로벌 용어에서 볼 때, 전문 장비를 가지고 높은 산이나 바위를 오르는 행위는 등산(mountaineering) 혹은 등반(climbing)이라 하며, 전문 장비 없이 산 정상을 포함한 그 주변의 자연길 혹은 시골길을 오랜 시간 걷는 행위를 트레킹(trekking) 혹은 하이킹(hiking)이라 한다.

 

트레킹과 하이킹은 서로 유사한 뜻으로 불리나, 혼용하여 사용하기도 한다(케임브리지 영어사전, 2025)(코오롱 등산학교, 2025).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가지의 용어 사용에 있어서 대단히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다. 필자가 『트레킹의 원리』를 집필하면서 수시로 구글(google)을 통하여 트레킹의 글로벌 정보를 취득하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느낀 점이 있는데, 서양에서는 전문 장비(피켈, 크램폰, 카라비너, 로프, 하켄 등)를 가지고 높은 산 정상이나 바위를 오르지 않는 이상은 모두 트레킹 혹은 하이킹이라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등산은 산이나 바위를 오르기 위한 장비들을 이용할 때만 등산. 등반이라 부르고 있으며, 그렇지 않고 산 정상이나 그 주변을 걸을 때는 트레킹. 하이킹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전문 장비를 가지고 높은 산이나 바위를 오를 때도 등산이라 부르며, 전문 장비 없이 평범한 산에 오를 때도 등산이라 한다.

 

◼ 등    산 : 전문 장비를 가지고 높은 산에 오르는 행위(mountaineering)
◼ 등    반 : 전문 장비를 가지고 바위를 오르는 행위(climbing)
◼ 트레킹 :  전문 장비 없이 산 정상이나 그 주변 자연길 시골길을 걷는 행위(trekking, hiking)

 

이러한 용어 선택의 현상은 매월 1차례 이상 산행이나 트레킹을 즐기는 평범한 트레커들이 전체 인구의 70%를 넘는다는 지금의 한국인들이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다.

 

이러한 왜곡된 용어 선택의 근거를 생각해 보아야 하며, 그 진원지를 찾았다면 그것을 고쳐야 할 것이다. 그 왜곡의 진원지를 찾으려면 우리나라 트레킹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아야 한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Carr:1892~1982년)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간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이 말은 과거와 현재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트레킹 문화에는 용어 선택에서 발생한 어떤 커다란 문제점이 존재하고 있다.

 

 

한국 트레킹의 과거


조선시대의 트레킹은 ‘산수유람(山水遊覽)’ 혹은 ‘유산(遊山)’이라는 형태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대부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유행이라는 표현보다는 일생일대의 숙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정치영, 2014a). 그 시대의 산수유람은 시간과 돈 그리고 위험성이 뒤따르는 힘든 일이었으며, 그 힘든 만큼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그 시대에는 도로 개념이 부족했던 탓에 여행길은 험했고, 산길은 짐승들의 등장으로 더욱 험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 당시 사대부들의 사상을 지배했던 유교라는 학문에는 자연숭배에 관한 정의들이 깊은 철학적 수준으로 존재하였기에 그 유람의 정신적 가치는 심오한 부분으로 여겨졌다.

 

그러한 자연숭배에 대한 철학적 기반을 바탕으로 사대부들은 오랫동안 준비하여 평생의 숙원인 먼 유람을 떠났고, 산에 오르는 것을 정신 수양의 한가지로 생각하며 위험을 무릅쓰면서 험한 산에 올랐다.

 

그들이 남긴 ‘산수유람기’나 ‘유산기’는 그들의 유람이나 산행을 기록으로 남긴 책들인데 현재 600여 편이 남아있다.

유산기에 나타나는 선인들의 산행은 정상 정복에 전부를 걸지 않았다. 산행을 산꼭대기로 데려다주는 통쾌한 행위로 인식하는 대신, 산 자체와 교감하는 겸허한 인간 활동으로 여겼다.

 

다시 말해서 조선의 산행은 등산이 아니라 입산(入山)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산을 정복이나 건강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 게 아니라, 산 자체와 교감하고 동화하는 혼연일체의 사유로 산을 즐겼다(박원식, 2024).

 

금강산을 오른 홍인우는 금강산 유산기(유금강록)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한다. 높은 곳에 오르면 ‘멀리 가는 사람은 반드시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하라’라는 뜻을 알게 된다.

 

또 물을 보면 ‘만물이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도다’라고 하신 공자의 오묘한 뜻을 알 수 있다. 산천을 보고 있으면 한편으로는 중도에 포기하거나 스스로 선을 그어 두고 나아가지 않는 우유부단한 성격을 상기시키게 된다.

 

또 한편으로 는 ‘하나를 완성한 후에 하나씩 나아가라’라는 가르침에 힘쓰게 된다. 여행이 어찌 명승지를 탐방하고 유람을 즐기는 데만 목적이 있겠는가? 도덕과 지혜를 체득하고 사물의 이치를 궁리하는 데도 역시 일조가 되는 것이다(정치영, 2014b).“

그들이 남긴 여행 기록에 관한 책들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당시의 ‘산수유람’ 혹은 ‘유산’이라는 말뜻은 지금의 트레킹과 일치한다.

 

오히려 예전의 그 용어들은 지금의 ‘등산(登山)’이나 ‘등반(登攀)’ 혹은 ‘산행(山行)‘이라는 용어들보다도 지금의 트레킹(글로벌적인) 과 더욱 일치하거나 깊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쓰인 ’ 유(遊)’는 ‘떠돌다’ 혹은 ‘즐기다‘라는 뜻이며, ’유람(遊覽)’은 그 ‘유(떠돌다)’라는 뜻에 ‘보다’, ‘관람하다’의 뜻이 덧붙여진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한다’라는 뜻이다.

 

‘유산’의 경우도 말뜻을 풀어보면 ‘산을 떠돌다’ 혹은 ‘산을 관람한다’라는 뜻이 된다. 이와 비교할 때, 지금의 ‘등산’ ‘등반‘ ’산행‘이라는 단어를 풀어 보면 대체적으로 ’오르다‘라 는 뜻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을 오른다‘ 혹은 ’바위를 오른다’의 뜻이다. 그나마 ‘산행’은 ‘산을 오른다‘라는 뜻과 ’산을 유람한다‘의 복합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에 조선시대의 ‘유산(遊山)’과 유사하게 들린다.

지금 이 시대에 트레킹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쓰이는 ‘등산’ ‘등반’ ‘산악회’라는 용어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등반가(산악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단어들이다.

 

그 당시 산에서 필요한 것은 알피니즘(alpinism)보다는  일본 제국주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공격적이거나 성과 중심의 목적성이었다.

 

(主: 알피니즘; alpinism: 유네스코에서 정의하는 알피니즘은 산의 바위나 얼음 같은 지형을 통해 산의 정상에 오르는 행위를 말하며, 현대에는 그 오르는 기술보다도 산 혹은 자연을 향하는 과정에 대한 심미적인 사유와 태도를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

 

당시 일본인들은 한국 땅에 대한 토지조사사업과 한국인들을 일본 황국 신민으로 연성하기 위한 현대적인 등산 기술이 필요했고, 서구 등산 기술을 배운 일본인 철도국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조선산악회(1931~1945)를 만든 것이다(안치운, 2023a).

‘등산이나 ‘등반‘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에게서 그 기술을 배우면서 접한 일본식 단어들이다.

 

일본인들은 스위스 인근의 유럽 인들에게서 고산등반(마운틴니어링:mountaineering) 기술을 배웠고, 그 기술들에서 핵심 기술인 클라이밍(암벽등반:climbing)이라는 용어를 일본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일본식 용어로 ’등반(혹은 등산)‘이라고 했다.

 

그 당시 조선산악회 소속의 일본인들이나 한국인들이 탐독하던 대표적인 등반 기술 서적은 영국인이 지은 ‘마운틴 크래프트; Montain Craft(1920년)’의 일본 번역본 ’등산의 감독과 지도; 登山の 監督と指導(1932)‘와 일본인 저서 ’바위와 빙설의 등반기술; 岩と氷 雪への登攀技術(1939년)‘이었다(안치운, 2023b). 

그리고 지금의 ’산악회’라는 단어는 일제 강점기의 ‘조선산악회(朝鮮山岳会)’에서 비롯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 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등산’ ‘등반’ ‘산악회’라는 용어들이 지금도 한국에서 는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에 의해서 전수된 등반기술에 대하여 민족적인 잣대를 들이대거나, 훌륭한 알피니즘을 간직한 등반가들을 흠집 내려는 게 아니다.

 

단지 그 시대의 공격적이거나 성과 위주의 등반이나 등산에 관한 태도 들이 지금까지 우리 트레커들의 마음속에 이어져 오고 있으며, 그것들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트레킹에 분명히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중에 ’등산‘이라는 단어는 지금도 전문 등산(mountaineering, climbing)을 하는 산악인이든,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산에 올라가는 트레커들이든 지금 한국에서 가장 많이 애용하는 단어다. 

이러한 현상은 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산에 대한 공격적이거나 정상 중심의 목적성이 지금까지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이러한 의구심은 현재 우리의 트레킹 문화에서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 트레킹의 현재


한국은 전체 국토의 70%가 산으로 구성되었기에 트레킹에 관한 자연 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게다가 4계절까지 뚜렷하여 그 자원의 가치는 매우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풍족한 자연 자원 을 기반으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산을 좋아했고, 산 정상과 그 주변의 계곡이나 강줄기를 따라 유람을 즐기고는 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 1970년대 말부터는 그야말로 등산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다. 1977년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른 고상돈씨는 귀국할 당시에 대대적인 카퍼레이드를 받으며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전국적인 등산 열풍이 불었고 국내 높은 산이든 낮은 약수터 산책이든 국민들은 건강을 위해 산을 찾았다. 

이후로 허영호, 오은선, 김창호,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등 숱한 등 반가들을 배출하면서, 국민들의 산에 대한 사랑은 지금까지도 식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산과의 인연은 우리나라의 풍부한 산림자원이 그 첫 번째 요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인이 그동안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모든 영혼을 쏟아부었고, 그러한 결과로 경제적 급속 성장을 이루어 낸 사회환경에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급속한 경제성장은 등산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자.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2015년 9월 11일 자 기사에서 “장시간 노동으로 녹초가 된 한국인이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인기 있는 방법이 등산이다”라는 기사와 함께 한국 사람들의 등산문화에 대하여 비평을 했다.

 

“한국인들이 전쟁으로 피폐해져 빈곤에 찌든 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번영한 국가 중 하나로 만들기 위해 수십 년간 고생스럽게 일해 왔고, 그것이 몸에 배었고 더 잘되기 위해 기를 썼던 평일의 스위치를 주말 등산에서도 끄지 못한다.

 

그들은 산에 빨리 올라가고 빨리 내려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라고 한국인들에게 쓴소리를 했다. 

이러한 우리의 등산 문화는 진정한 등산 문화 그러니까 알피니즘(산, 자연을 향하는 태도)이나 산행의 건강성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되새겨 봐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연 ‘더 높이’ ‘더 빨리’의 등산 문화가 우리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진심으로 살펴봐야 한다. 월스트리트저널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즈음 한국에서는 ‘더 높이’ ‘더 빨리’를 고집하는 등산이 아닌, 다양한 트레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산 위에서는 산과 산을 연계하여 걷는 산 종주 트레킹, 산 아래에서는 숲길, 혹은 옛길을 걷는 방식의 트레킹. 그리고 평지에서는 걷기 여행(도보여행)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등산이라고 불렸던 산 사랑이 제주올레의 개장을 기점으로 산을 포함한 모든 트레킹. 걷기 여행으로 확 장된 것이다.

 

이러한 트레킹. 걷기 여행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트레킹의 의미에 부합하는 자연을 향하는 태도 그리고 시골문화, 유적지, 사람에 대한 체험 위주의 트레킹인 것이다.

이제는 성과 위주의 트레킹보다는 나 자신의 진정성 있는 건강과 자연과 더불어 의식의 성장을 위한 발걸음을 생각해야 한다.

 

어떤 경우도 그렇겠지만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남들의 시선만을 의식하거나 남들보다 위에 서겠다는 마음이 앞서게 될 경우 우리의 심신은 온전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어느 정도 높이의 산이 내 도전의 대상이 되는가. 어느 정도 거리의 산행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가. 또한 어떤 환경의 트레일이 나의 심신에 의식적 향상을 주어지게 하는가. 

이러한 나를 위한 판단들에 대한 진심 어린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트레킹’이나 ‘둘레길’이라는 단어가 ‘등산‘보다도 더 많이 사용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등산’과 ‘트레킹’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용어의 선택이 큰 영향력을 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종종 사람들과 둘레길을 걸을 때에 옆에 같이 걷던 사람의 전화 통화를 들어보면, 본인은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 ” 응, 나 지금 등산 왔어“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둘레길’보다는 ‘등산’이라고 말해야 자존심이 서는 모양이다. 월스트리트저 널이 꼬집은 급속한 경제성장의 영혼이 둘레길에서도 아른거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 영혼은 멀찌감치 일제 강점기 때 일본사람들이 만든 ’등산‘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되었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이러한 잘못된 자존심은 바윗길에 대한 교육이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함부로 바위에 올라감으로써 많은 부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산림청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만 19세부터 79세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고 위험이 높은 통제구역에서 적발되는 건수가 2018년에 비해 2022년에는 70% 이상 증가했고, 2021년까지 6년간 등산이나 트레킹 중 사망한 사람은 474건, 부상은 2 만 1,536건으로 나타났다(현대건강신문, 2023).

이제 결론을 내어보자.

 

‘등산‘이라는 용어는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등반(climbing)과 혼용하여 쓰이던 것이어서  지금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용어다.

 

내 일반적인 산에 갈 때는 ’등산‘이라 는 단어보다는 조선시대 선조들이 사용했던 ‘산수유람(山水遊覽)’이 나 ‘입산(入山)‘과 유사한 ‘산행(山行)’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등산‘은 뭔가 산에 대하여 아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산행이나 트레킹보다 산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있어 보이게 하는 단어인 듯 보인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에게 진심인 그리고 자연에게 진심인 산과 길을 걸어야 한다. 보여주기 위한 산과 길, 허영심으로 어우러지는 산과 길과는 절연해야 한다.

 

더불어 ’산행‘ ’등산‘ ’트레킹‘ ’걷기 여행‘의 호칭에 따른 육체와 마음의 건강을 연구하는 전문적인 건강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에는 어떠한 자세와 마음으로 오르고 내려와야 하는지, 산 종주 트레일을 걸을 때에는 어떻게 걸어야 하고, 평이하고 긴 걷기 여행길에서는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스스로 정의해야 한다.

 

트레킹에서의 걷기에 대한 마음을 정의할 때에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산수유람‘과 ‘유산‘의 정신을 꼭 참고해야 한다.

 

선조들의 그 정신은 지금 세계적인(글로벌적인) 트레킹이 지향하고 있는 자연을 향하는 태도와 세상에 대한 체험보다도 더욱 깊은 철학적 사유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깊은 사유 속에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과 위주의 결과물이 아닌 자기 자신과 자연에 대한 진심 어린 고찰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