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아주대 교수·박종희 서울대 교수 인터뷰]
지난달 국제학술지에 '층위적 능력주의' 논문 게재
문과 급제자 전수 분석, '능력주의' 작동 방식 분석
가문 영향은 '최고위층'에 집중, 중간층은 덕 못 봐
능력주의 구현됐지만, '우회 경로' 발달로 제도 변질

조선시대 500년 역사를 지탱해 온 관료 선발제도 '과거'는 중국 수나라(581~618)에서 시작돼 958년 고려 광종 때 한반도에 도입됐다.
'입현무방(立賢無方·사회적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인재를 구한다)'과 '유재시용(惟才是用·오로지 입증된 재능에 따라 관직을 맡긴다)'이라는 두 가지 원칙 아래 능력주의를 표방한 제도였다.
그렇다면 과거제는 실제로도 능력에 따라 인재를 선발했을까.
최근 국내 연구진은 조선의 과거제를 분석한 결과, 능력주의가 작동한 측면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엘리트 집단에 유리한 우회 경로가 확대됐다고 밝혔다. 능력주의 선발은 끊임없는 점검과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사실 전근대 과거제가 사회 이동의 통로였는지를 둘러싼 논쟁은 중국 사례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이어져 왔지만, 한국에서는 이렇다 할 실증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다.
조선이 남긴 방대한 사료에도 불구하고 전산화가 더뎌 자료 접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환점은 1393~1894년 조선 문과 급제자 1만4,639명의 신상을 담은 '문과방목' 데이터베이스 구축이었다.
에드워드 와그너 하버드대 교수와 송준호 전북대 교수가 주도한 협동 연구가 1998년 결실을 맺었다.

아주대 인문과학연구소 디지털역사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는 이상국 교수는 일찍이 이 데이터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조선 사회의 이동성과 지배 엘리트 형성 과정을 실증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자료라고 봤다.
2016년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와 함께 연구를 시작해 2019년부터 조선의 능력주의를 본격적으로 분석했다.
연구는 조선의 과거제를 단순히 '능력주의' 또는 '신분 세습'으로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특히 중간급 관료 자녀의 합격률이 무관직 집안 자녀보다 다소 낮게 나타난 점은 하나의 제도 안에 여러 다른 선발 논리가 공존했음을 시사했다.
놀라운 건 이러한 구조가 오늘날 입시·채용제도를 둘러싼 공정 담론과 유사하다는 점이었다.
이와 관련해 두 교수는 4월 국제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층위적 능력주의'에서 "필요한 건 불평등 타파라는 미래지향적 목적에 맞게 능력의 정의와 선발 경로를 끊임없이 재설계하고 감시하는 일"이라고 짚었다.
지난달 2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두 교수를 만나 함의에 대해 물었다.

-과거제도를 주제로 한 다른 국내 연구와 비교했을 때 이번 연구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이상국(이하 이) : 다양한 경로를 가진 조선의 과거제도가 기회의 균등 차원에서 어떻게 진화했는지 보여준 것이다.
문과를 기준으로 조선은 △예비시험(소과)·본시험(대과)을 순차 합격해야 하는 정식 경로에 더해 △왕실의 경조사를 기념하기 위한 비정기 시험 '별시'를 병행했고 △이미 정식 경로 또는 별시 등을 통해 입직한 현직 관료들의 대과 재응시도 허용했다.
-결과는 어땠나. 가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나.
박종희(이하 박) : 전체 급제자를 대상으로 보면 정3품 이상인 당상관급 아버지를 둔 응시자가 유의미한 우위를 차지했다.
별시에서 그 영향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공고 기간이 짧다 보니 변두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시험 소식을 늦게 접할 수밖에 없는 반면 엘리트 가문의 자제들은 네트워크와 재력을 기반으로 대비가 보다 수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식 경로 안에선 혈통이나 가문이 최종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중간계급 응시자가 불리한 측면도 있었다.
그 단서는 소과에서 찾을 수 있다. 도별로 합격자 수를 배정하고 지방에서 시험을 치르게 하는 '지역 할당제(향시)'를 실시해 변방 지역의 인재들을 구조적으로 보호했기 때문이다.
대과 1차 시험 역시 향시로 치러져 지역에 따른 기회 격차를 줄였다.
-특권층 입장에선 정식 경로가 아닌 우회 경로를 선호했겠다
박 : 문과 급제자의 평균 연령은 35.4세였다. 당시 기대수명을 고려하면 과거 시험이 그만큼 어렵고 경쟁이 치열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17세기 전란을 거치며 상황이 달라졌다. 영조와 정조가 별시의 남발을 제한했지만 양반가문이 오랜 기간 축적한 교육 자원을 비엘리트층이 따라잡긴 어려웠다.
결국 19세기에 이르러 과거제도는 관직 세습 통로로 변질됐다.
-경로의 다양성이 능력주의를 보장하지만은 않는다는 결론이 흥미롭다.
박 : 오늘날 논의와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대입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이나 특기자 전형이 시험 점수만 보지 않고 다양한 잠재력을 보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정보력과 컨설팅, 비교과 활동 기회가 많은 수험생에게 유리하지 않나.
제도 자체보다 제도를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정보와 자원이 차별적으로 배분된 게 문제다. 능력주의의 구현 방식을 계속 개선시켜야 한다.
이 : 중간층의 상대적 박탈감이 통계적 허상은 아닐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이들은 상류층만큼의 자본을 갖고 있진 않으면서, 소외계층에게 주어지는 지원에선 배제된다.
열심히 하면 성공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다고 믿지만, 막상 경쟁해보면 현실의 벽을 느끼고 언제든 하락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린다는 점에서 오늘날 중산층의 현실을 얘기해주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이 : ①특정 가문·지역·계층 출신이 시험이나 선발 과정에 훨씬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거나 ②겉으론 모두가 시험을 볼 수 있지만 성과가 특정 배경에 의해 좌우될 때 제도의 재설계를 고민해야 한다.
③공식 절차 외에도 부모 네트워크나 무급 인턴십 등 우회 경로가 확대되면서 엘리트에게 유리한 구조가 고착화되거나 ④준비 비용이 과도하게 높아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박 : 중요한 건 그러한 불평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초기에 시정하는 거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헤크먼 교수는 유년기 교육에 투자한 1달러가 성인이 됐을 때 약 16달러의 가치로 돌아온다고 했다.
이는 불평등을 입시나 채용의 결과 단계에서 고치려고 하면 엄청난 비용과 혼란이 수반된다는 뜻이다. 한국사회에서 공교육을 살리는 게 중요한 이유다.
-앞으로 연구 계획은
이 : 문과방목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선시대 지배 엘리트의 정치 지배 권력 지형을 탐구하고자 한다.
현재 아주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지배층뿐 아니라 중인, 평민, 노비에 걸친 전 사회 계층의 사회 이동성을 분석하고 있다.
과거제도 합격 이후 관직·관청 이동에서 나타나는 조선 지배 엘리트 구조의 특징도 연구하고 있다.
한국일보
'2021~2026세상사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유치원 선생님이 사라진다! (0) | 2026.06.01 |
|---|---|
| 2026년 월드컵 우리나라 경기일정 (0) | 2026.05.31 |
| 지리산 대피소, 침상 넓혔다 (0) | 2026.05.27 |
| [ 칼럼 ] ⑤ 우리의 산야는 안전한가? (0) | 2026.05.27 |
| [ 칼럼 ] ④ 우리의 산야(山野) 는 안전한가? (0) | 2026.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