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상의 인수봉 초등자로 알려진 영국인 클레멘트 휴 아처(Clement Hugh Archer, 1897-1966)가 한국과 일본에 머물던 기간 등반했던 보고서 <일본과 한국에서의 등반(Climb in Japan and Korea)>을 완역했다.
영국산악회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보고서는 박기성, 김장욱, 변기태, 홍하일, 이종헌씨 등 산악연구모임 ‘와운루계회’ 회원들이 사본을 구매해 오영훈씨가 번역했으며, 총 원고지 600매 분량이 이른다.
서구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이 땅의 ‘탐험시대’를 조명하기 위해 보고서를 12회에 걸쳐 독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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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한국어 명칭을 영어로 표기하는 데 따르는 문제점을 먼저 서술하겠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어 명칭은
한자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한국, 일본, 중국 모두가 각기 발음이 다르다.
한국어는 물론 더 오래 사용되기도 했고
지금도 일반인들 사이에 더 익숙하게 쓰이긴 하지만
현재 공식 표준어는 일본어다.
기차역 표지판이라든지 관광국에서 발간한 안내서 등
외국인에게는 사실상 일본어가 훨씬 편리하다.
일본어는 알아도
한국어는 전혀 모르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에게는 다행인 셈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불필요할 것 같아
한국어와 일본어를 통일시키지는 않았다.
지명을 처음 소개할 때는 일본어와 한국어 모두 표기하되
그 뒤부터는 둘 중 더 편리하게 사용되는 명칭으로 기록했다.
다만 이 책에서
한국어는 첫 글자를 대문자로
일본어는 소문자로 표기했다.
사실 ‘코리아’(Korea)라는 국가명 자체도
아마도 한국 고대 국가인 고려(KORYU)국에서 와전된 것일 것이다.
이 이름도 사실 이 나라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고
조선이라고 부르지만 유럽인들에게 친숙한 까닭에
이 책에서는 코리아라는 명칭을 고수하겠다.
서쪽에서 본 겨울 북한산. 인수봉이 표시되어있다.
상장능선 부근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보인다.
“산으로 뒤덮인 나라 한국”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산으로 뒤덮인 나라다.
일단 큰 산줄기가 반도 전체를 감아 돈다.
최고봉은 만주와의 국경에 솟은 2732미터 산 높이는
원문에 표기한 대로 사용했다.
현재 백두산의 공식 높이는 2750미터 높이 산으로,
중국명 창바이산(긴 흰 산), 한국명 백두산(하얀머리산)이다.
일본어로는 같은 문자를 쓰면서
초하쿠산 또는 하쿠토산 두 가지로 불린다.
아마도 앞의 발음은 산군 전체를,
뒷 발음은 최고봉만을 가리키는 명칭인 듯하다.
1881년 프랜시스 영허스번드 경 및
H. M. 제임스, H. 펄포드가 1881년 만주 방면으로 등정했고,
또 그보다 175년 전에 중국황제의 명을 받은
제수이트 측량가들이 등정했을 가능성도 있다.
혹자는 이 산명이
산정에 쌓인 만년설로부터 연유했으리라 추측할지도 모를 텐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산에 널린 흰 빛깔로 반짝이는 습한 부석(浮石)이
멀리서 봤을 때 마치 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화구에는 길이 3킬로미터 너비 2킬로미터 가량의 호가 형성되어 있다.
이로부터 순가리(Sungari)가 발원하고 몇 킬로미터 아래에서
거대한 압록강(Yalu)과 두만강(Tumon)이 각각 발원한다.
백두산 남쪽으로는 약 150킬로미터에 걸쳐
조금 낮지만 꽤 복잡한 고원지대가 펼쳐져 있다.
이 산군은 정상에 이르기까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있고
접근이 무척 어려워 보인다.
바다에 면한 함흥(일: 칸꼬)까지 이르면 고도가 낮아진다.
하지만 강원도(일: 코겐도)의 산군으로 이어지면서 다시 고도가 올라간다.
이어 장엄한 금강산(일: 콩고산, 영: Diamond Mountains)이 펼쳐진다.
60여 킬로미터 남쪽으로는
두 번째 산군인 설악산(일: 세쯔가구산)이 펼쳐지는데
설악산은 금강산보다 고도는 높지만 훨씬 덜 알려져 있다.
이로부터 120킬로미터 남쪽으로 산줄기는 내륙으로 휘어 돌고
마침내 남해안에 이르러 바다로 내려앉는다.
그러다가 다시 120킬로미터 바다 건너
제주도(영: Quelpart)에서 솟아오른다.
남부 지방은 대부분 강원도보다 고도는 낮다.
두 예외가 있는데,
본토에 있는 지리산과
남해에 장군마냥 우뚝 솟은 제주도의 한라산이다.
둘은 2천 미터 가까이 솟아 한반도 최북단을 제외하고는
해발고도에서 다른 산들을 압도한다.
그러나 한국이야말로
‘산은 높이로서 산이 되는 건 아니다’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고도로는 대단치 않은 금강산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산이다.
오늘날까지
유럽인이나 동양인들 모두가 큰 관심을 기울여왔다.
아름다운 경치, 무수한 등반 잠재성,
한국불교의 흥망성쇠와 함께한 역사 등
각종 전설과 역사에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금강산이 아니라
수도권 인근에 위치한 산들이다.
이들은 비록 규모는 작을지라도
경치가 상당히 빼어날 뿐만 아니라
등반 잠재성 및 민속학적인 면에서도
무척 흥미로운 데도 지금까지 거의 주목받지 않아왔다.
이 산들은 오래된 산성들과 연관이 깊다.
중국식 산성문화가 한국에도 퍼져 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외세의 침략과
내란에 대비해 거대한 장벽을 쌓아 안전을 도모했다.
하지만 중국은
북방 국경 전체를 산성으로 완전히 둘러친데 반해
한국은
산악은신처만을 건설하는 용도였을 뿐이다.
단일 왕국을 이룩해 온 한국의 역사는 두 국가로 나뉜다.
첫째는
서기 918년~1392년은 수도를 송도(일: 카이제)에 둔 고려 왕조였고,
이어 1392년부터 1911년까지는
수도를 서울(한양, 경성, 일: 케이조)로 옮긴 이씨 왕조였다.
두 수도는 모두 평야지대에 위치해 있지만 인근에
상당히 가파른 산군이 위치해 있어 이를 피난처로 삼았다.
피난처를 건설한 울타리형 산악지대는 면밀한 검토를 거쳐 선택됐고,
이 장벽 사이사이로
가파른 암벽능선 곳곳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성문을 건설했다.
송도의 산성이 위치한 송악산(일: 타이코잔)은
6백여 미터로 옛 수도에서 약 15킬로미터 가량 북쪽에 솟았다.
고려 후기 실제 몽골이 남침해
한반도 전역이 환난을 겪을 때 송악산 산성이 사용되지는 않았다.
왕실은 대신 본토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한강 하구의 작은 섬 강화도로 피신했고
이곳에서 29년 동안 아슬아슬하게 독립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이 도피가 허술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바다에 익숙하지 않은 몽골 군대는
거센 물길에 막혀 더 이상 진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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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쪽에서 본 겨울 북한산. 인수봉이 표시되어있다. 상장능선 부근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보인다. |
“대부분 탐사 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한국”
오늘날의 수도는 이씨 왕조 창시자 이태조가 설계‧건설했다.
해발 50미터가 채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 수도는 산성에 둘러싸였다고도 말할 법도 한데,
왜냐하면
15킬로미터에 달하는 성벽이 약 5킬로미터 정도를 제외하고
모두 상당히 가파른 언덕 꼭대기에 서 있는 것이다.
특히 북쪽과 서쪽 성벽지대는
꽤 괜찮은 암벽등반 대상지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1628년에 이르러 서울 남쪽 20여 킬로미터 밖의
해발 5백 미터 남한산(일: 난칸잔)에 산악 피난처가 급하게 건설됐다.
이 산성은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성이라 할 수 있다.
완공 바로 10년 뒤 만주가 침략해 들어와 왕은 이곳으로 피신했는데,
수비대는 그 긴 겨울을 용감하게 버텨냈지만
마침내 군량 부족으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남한산 자체는 그다지 볼품은 없지만
역사유적 및 그림 같은 조화,
장엄한 경치는 일품이다.
당일 등산이나 주말 야영 정도로 손색이 없다.
산꼭대기에 건설된 대형 누각은
그 옛날 수비대 대장이 지냈던 곳으로,
이곳에서 밤을 보낼라치면
아무리 경험 많은 산악인이라 할지라도
견고한 지붕 아래 누운 채로도 탁 트인 조망이
사방에 펼쳐지는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1717년, 더 견고한 산성이
수도 북쪽 약 7~8킬로미터 밖으로 건설됐다.
산성 안팎을 잇는 길들도 추가 장벽을 쌓아 견고함을 더했다.
산성으로 기능하기에는 너무 늦게 건설됐는데,
만주군이 마지막으로 침략해 온 지 80년 뒤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등반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대단한 암릉이다.
북쪽으로 이어진 능선에 솟은 암벽은 날카롭게 깎아지른 바위 모서리들,
가파른 페이스 등반 및 여러 크랙 등등으로
난이도도 다양하고 무척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암봉들은
한반도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한 지류에 속한다.
최고봉은 8백 미터를 겨우 웃도는 정도지만
산정마다 우뚝 솟은 거대한 암봉들의 자태가 고도에 비할 바 아니다.
지도를 통해 보면
한국은 대부분이 탐사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등반가의 입장으로선 꽤나 불완전하게 알려져 있다.
일단 한국 대부분의 지역이 50미터부터 1500미터까지
다양한 고도의 어느 정도 민둥산들로 덮여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들은 대체로 특징 없이 밋밋한 언덕들에 지나지 않지만
북한산의 암봉 같은 바위들이 물론
다른 지역에도 충분히 있으리라 생각된다.
산악애호가라면 누구나 공감할 텐데,
북한산의 암봉을 곁에 둔 서울이란 정말로
세계에서 보기 드문 지형에 위치한 수도임에 틀림없다.
내가 직접 적절하게 다룰 수 있는 부분은
금강산과 수도 인근의 낮은 산군들에 대해서뿐이다.
그보다 북쪽이나 남쪽으로는 탐사할 기회가 없었다.
일본과는 달리 등반가의 시선으로 본 한국에 대해서는
기존에 영어로 출간된 적이 없다.
이에 충분히 가치가 있으리라 여겨
별개의 장을 통해 다른 여행가들이 제공한 귀중한 자료들을 토대로
멀리 떨어진 지역들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서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