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한국에서의 등반-사진 기록 및 가이드 ❶전체 서론
이 책에 1919년부터 1934년까지
내가 일본과 한국에서 행한 등산들 중 일부를 자세히 서술했다.
일본의 등산에 대해서는
사실 기존에 이 책과 비슷한 종류의 글들이 출판된 바 있다.
월터 웨스톤 신부의 기록이라든지 고베에 있었던
‘산양 고대 분류체계’(현존하지는 않음)의 창시자
H. E. 돈트씨의 업적을 기리는 <이나까> 판본들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머레이 월톤 신부가 쓴
<일본과 포모사 산행기>도 출간되었다.
내용이 어떠하든 이전에 출간된
저작들은 ‘탐험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시기에 벌어진 일들을 다루고 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니다.
‘탐험시대’라는 표현에 혹시 오해가 있을지 모르겠다.
일본인들이 자기네 산들을 새롭게 경험하는 데에
유럽인들이 꼭 필요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실상은 그 반대다.
서구 국가는 물론이려니와
전 세계 어디에도 아마도 그와 같이 오래 지속된
등산 전통을 갖춘 나라는 없을 것 같다.
서구에서 등산은 아주 최근에야 시작됐다.
고작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선조들은 산을 멀리하고 무서워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훨씬 오랫동안 산을 끔찍이도 아껴왔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까지도
산신을 경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결코 미지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마음 따위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그들은 산들의 장엄한
풍광들 속으로 적극적으로 다가섰다.
그들에게 산이란
친근한 정령들이 사는 곳이요,
따라서 인간사에 찌든 사람들이
잠시나마 신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고귀한 장소였던 셈이다.
서구와 일본을 이런 식으로
비교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판단이 아니다.
만일 유럽의 산들처럼
일본의 산도 오르기 어려웠더라면
일본인들도 등산을 일찍부터
시작하진 못했을 거라는 추측은 잘못이다
. 신성한 산봉우리를 쉬운 길로 따라 오르는 게
등산이 아니라는 판단도 또한 잘못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생각들의 근저에 깔려있다.
등산로란 애초부터 쉬웠던 게 아니다.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지 않았더라면
그런 길들이 생기지 조차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이득을 취하고자 이들이
그렇게 외진 산들에 길을 낸 게 아니다.
이 등산로들은 오히려
산에 대한 미적인 취향을 보여주고 있다.
서구에서는 극히 최근까지도
이런 감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에서 그런 등산로들이
상당히 잘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은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는
미학적 감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1920년대 이후 일본, 서양식 근대등산 대중적으로 확산
진정한 산악인의 기준은 이들에게
등반기술보다는 등반가의 정신에 있는 것 같다.
따라서 내가 볼 때 비록 등반난이도는
미미한 수준일지라도 정성스런 마음으로
후지산 정상에 새벽같이 올라
제단에 경배 드리는 일본의 신도들이야말로,
고개 저편에 큰 시장을 찾아
공포스럽기만 한 알프스 고개를 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세의 유럽 상인들보다
더 근대 등산가와 닮은 것 같다.
상인들이 올랐던 고개가
난이도로 치면 더 어렵겠지만
그들에게서 등산가의
마음가짐이란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산들은
난이도에서도 무시할 바 아니다.
길이 없다면
대부분의 산에는 숲이 빽빽해 매
걸음 전쟁을 치러야 할 정도다.
또한 이런 숲 속에서는
몇 시간씩 나무들 사이에 갇혀
마치 짙은 안개 속에 있는 듯
전혀 시야를 확보하기 어렵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다시 빗대어 말하자면,
변덕스러운 온대지방의 기후라던가
고산지대의 급작스런 눈보라 따위에
이들은 이미
익숙해져 있어야만 했었다.
이들에게 정상 등정이란
잠깐 온화한 어느 날 쉽게 오르는 게 아니다.
용감한 결단과 확고한 실행으로
몇날 며칠을 이겨낸 결실인 것이다.
저 신도들 또한 가장 쉬운 길로
편하게 걸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결코 아니다.
때로 쉬운 길이 아니라
어려운 길로 정상에 올라야 제대로
경배를 드리는 것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시코쿠섬에 있는
이시즈치야마가 그렇다.
동면 등산로 마지막 구간은
세 구간의 밧줄을 잡고 오르는 길로
갈수록 점점 어려워진다.
마지막 구간은 오늘날에도
누구나 가슴 졸이지 않고 넘어가기 어렵다.
밧줄이 고정되기 전에는
당연히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서쪽 면에는 쉬운 길이 있는데도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다.
또 다른 쉬운 산들에도
부러 어려운 바윗길들이 있어 이를
타고 오르는 게 더 좋은 일로 받아들여진다.
중세 일본에서도 근대 등산가의
정신과 노력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고
빈곤이 만연해 있던 시기에
이런 등반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부 신성한 산들에만
발길이 닿았고 몇 안 되는 등산로에만
사람이 몰려 어려운 요소는 금세 없어졌다.
따라서
일본 어느 산보다도 더 어려운
산들 사이에서 파생된 등반기술이라든가
등반에 대한 흥미를 갖춘
유럽 산악인이 일본에 왔을 때
드넓은 고산지대가
무인지경으로 펼쳐져 있게 되었다.
단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산을 다녔던 일부 사냥꾼들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었다.
즉 서양인 및 이들과 함께 했던 몇몇이
이런 산들을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한 셈이다.
일본의 산을 오르기란
여름일 경우 고난도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사실 거의 없지만,
이 초창기 산악인들은
앞서 말했던 빽빽한 숲을 헤쳐 나가고
또 밤을 지새울 거처를 마련해야 했고
지리정보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온갖 어려움을 감수해야 했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런 상황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야말로 최적의 토양 위에
서양의 문물이 전파된 셈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통해 도입된 신개념 등산에
일본의 산악 애호가들은 열성적으로 환호했다.
결국 채 몇 년 지나지 않아
초기 선구적 산악인들이 헤쳐 나갔던 원시적인
숲과 계곡들에는 이제 좋은 등산로가 생겨났다.
별을 보며 잠을 청했던 때가
무색하게 산장들이 곳곳에 들어섰다.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산정들이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고 혈기에 찬 젊은이들이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즉 세 단계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첫째는
고대로부터 50여 년 전까지 이어온 종교적 국면,
둘째는
188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의 탐험적 국면,
이후로부터
대중적 국면이 그것이다.
각 국면의 전환기에는
물론 지역별로 편차가 있다.
‘북알프스’의 주요 산봉들은
일찍이 1918년경부터 대중적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인적이 뜸한 ‘남알프스’에는 그보다
약 6년가량 뒤까지 탐험적 국면에 속해있었다.
머레이 월톤씨가 쓴 책에서
다룬 일본의 등산에 관한 부분은
이 국면 구분 중 탐험 국면 말기 및
대중 국면 전반을 다루고 있다.
등반에 대해 서술한 부분 말고도
월톤씨는 산악숭배사상과
민속문화에 관한 내용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
나는 그런 부분은 다루지 않지만
월톤씨가 그 분야에 관한 한 전문가인 것은 확실하다.
동계등반을 위한 스키의 광범위한 도입 및 활용
특기할만한 점은
네 번째 국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중적 국면과
완전히 구별되는 것은 아니고
이와 함께 발전해왔다고 볼 수 있다.
아득히 멀기만 했던 산정들이
등산로와 산장으로 이제 접근이 쉬워졌다.
일본의 등산은
그렇게 전반적으로 도보여행
수준으로 단순화된 경향이 있다.
물론 이는 나름대로
상당한 만족감을 가져다 줄 수 있겠지만,
더 큰 모험정신의
대상으로서는 아무래도 부족했다
.
그래서 오르기에
적당한 암벽이 있는 일부 지역들에서는
암벽등반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또 비록 더 힘들지만
더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는 계절을 택해
고봉을 오르는 경우도 생겨났다.
일본의 산들을 동계에 오른다는 것은
아무리 숙련된 산악인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등산로는 금세 심지어
몇 미터씩 눈에 덮여버린다.
또 산장들 덕택에 하계 등산은
이제 꽤 쉽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날씨가 변화무쌍한 동계에는 없어서는
안 될 긴급 대피소 역할을 톡톡히 한다.
심설산행이란
즉 하계보다 훨씬 긴 기간 동안
훨씬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짐꾼들도 짐을 적게 질 수밖에 없다.
낮이 짧으니
최대한 시간을 잘 쪼개 활용해야 했다.
기온이 낮으니 별도로
필요한 장비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다가 고지대로 접어들면
바위들은 얼음으로 덮여 무척이나
느리고 조심스럽게 타고 넘어야만 했다.
어떤 때에는 얇게 덮인 박빙이
햇볕에 녹기를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기도 했다.
게다가 눈사태 위험도 있다.
물론 어느 고도까지는 산림이 우거진 탓에
그 위험이 전반적으로
유럽만큼 일상적인 것은 아니다.
제대로
대처하기만 하면 위험이라기보다는
등반의 장애물 정도로 치부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폭설 중이거나
직후라면 상황은 다르다.
현명한 등반가라면 며칠이고
산장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릴 것이다.
이는 말하자면
난감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예비 식량까지 짊어지고
산행에 나서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산은 일본에 비해
꽤 낮지만 더 돌출된 암벽들이 많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에서는 단지 등산의 극히
일부분으로 취급되는 암벽등반이
한국에서는 주요 활동이 된다.
하지만 일본에 비해
한국의 여건은 모든 면에서 열악하다."
이것이
바로 일본 등산의 넷째 국면으로
내가 이 책에서
집중해 설명하려 하는 부분이다.
이 최근의 양상은 특히
스키의 광범위한 도입 및 활용과 병행되었다.
스키는 이제 대중 스포츠가 됐다.
아마도 스키를 이용하면 동계등반에서
크게 어려움을 덜 수 있으리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키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목적을 위해
스키를 활용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즉 스키와 스노우슈 중에
선택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여기선 얼마나 수월하게
눈 덮인 긴 숲을 통과하느냐가 관건이다.
깊고 부드러운
눈이 쌓여 있는데 등산로는 좁다.
빽빽한 관목들이 눈의 무게를 못 이겨
등산로를 온통 가로막고 있기 다반사다.
종종 덤불들로 아예 길이 막혀
스키로는 도무지 통과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실제 거의 모든 등반대들이
꽤 장거리의 숲을 통과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스키로 미끄러져 방향전환하는 운행
(역자주: 오늘날의 스템턴 기술)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만일 스
키로 큰 등반을 하려한다면
이때 등반가는 스틱을 잘 쓸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좁은 등산로에서 방향전환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스틱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숲을 벗어나
탁 트인 고지대에 접어들었다 하더라도
눈 덮인 사면이 바람에 딱딱하게 굳어
스키를 벗고 크램폰을
착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잦다.
한편 스노우슈라면
아주 울창한 덤불들을 헤쳐 나가기가 수월하다.
사용하지 않을 때 휴대도 편리하다.
활강 시 제동 문제도 없다.
물론 분설에 탁 펼쳐진 사면일 경우
스키와 비교해 무척 힘이 드는 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스키와 스노우슈 사이의 선택은 대상산에 대한
지식 및 등반시기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경험 없이는
이런 판단이 어려운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내 경험에 비추어 말하자면
크리스마스~3월 중순에 이르기까지는
북서지방 일대에서는
스키가 더 장점이 많은 것 같다.
강풍으로 관목들이 대체로 얕게 자란데다가
적설량은 무척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홋까이도섬은
4월 말까지도 스키를 추천한다.
반대로 대부분의 남쪽 산군들에서
춘, 추계 산행에는 대개 스노우슈가 더 적합하다.
나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좁은 숲지대 등산로에서
스키를 놀리는 기술이 충분치 않고
또 실력을 개발하고 싶은
흥미도 없는 탓인지 스노우슈만을 고집해왔다.
한편 시간이나 주어진 여건 탓에
스노우슈가 확실히 더 적합한 남쪽 산군들에서만
산행할 기회를 갖게 되기도 했다.
1919년~1934년, 외국인 등반가의 눈에 비친 한·일의 산
한국의 상황은 꽤 다르다.
한국의 등반과 관련해
아래에 자세히 서술할 텐데,
일단 가장 큰 특징으로
한국의 산은 일본에 비해 꽤 낮지만
더 돌출된 암벽들이 많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에서는 단지 등산의 극히 일부분으로
취급되는 암벽등반이 한국에서는 주요 활동이 된다.
하지만 일본에 비해
한국의 여건은 모든 면에서 열악하다
.
즉 아래 서술하는 등반들은
대개가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들이다.
본문의 기술들은
대체로 내 개인 경험의 기록이지만
일부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적 사례들도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기했다.
그런 역사를 채록한 것에 대해
내 조사의 가치를 주장하려는 게
아님을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다만 이 산들의 고유한
특성을 보여주려는 게 목표일뿐이다.
사실 대개의 외진 곳에 위치한 산들은
별다른 의미 없이 단순한 흙과
바위의 덩어리일 뿐일 경우가 많지만
금강산, 후지산, 오미네산만큼은 다르다.
이들은 각종 전설과 역사로 가득하다.
외형적인 모습을 기술하는 것은
반쪽의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런 이야기들 대부분이
영어로 출간되긴 했으나 그 책들은 대개
거의 안 알려지거나 절판된 지 오래다.
독자들 대부분에게 그 이야기들은
거의 생소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을 자유롭게 가져와 옮겼다.
만일 이미 아는 얘기들이라면
참을성을 가져주기를 미리 부탁드린다.
또한 여러 지인들로부터 요청이 있어서
접근로, 인근 숙박업소 상호 등등의 정보를 표기했다.
혹시 직접 찾아가보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리라는 판단에서였다.
이는 각 장 말미에 주석으로 달아 놓았다.
물론 일반 독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언급일 것이다.
이 주석에서 숙박업소에 관한 설명
은 별도 표기가 없는 한 일본식 관습을 따랐다.
산악지대 지역 여관 요금은
석식, 숙박, 조식을 합쳐 하루에 3~4엔 정도다.
일본의 오랜 관습으로 주인에게 주는
‘차다이’라 불리는 팁까지 합쳐 하루 5엔 정도면 된다.
숙박업소에서는 거의 모든 경우
극진하게 손님 시중을 들고 모두가
꽤나 공손한 반면 음식은 아주 소박하다.
도회지 음식에
익숙한 여행자라면 이런 곳에서
밥에 국, 채소만으로 배를 채우고
고된 산행에 나설 때 무척 허기를 느낄 수 있다.
이럴 경우 개인적으로
추가 식량을 준비하기를 권한다.
영국 육지측량부 지도(Ordnance Survey Maps)로
일본과 한국의 산악지대 부분의 지도를
1대 20만, 1대 5만 축척으로 구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이 지도는 지형정보,
등산로 및 산장의 표기가 아주 정확하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등산로와 임도의 구분이 생략돼 있다거나
현지어로만 산명이 표기돼 있는 등이다.
금강산(Diamond Mountains)과 같은 예외도 물론 있긴 하다.
안내인 비용은
하계에 일당 2~2.5엔이다.
타 계절엔 통상 50전을 더 준다.
등반 종료 후 팁을 주고 숙박비용도 물론 지불해줘야 한다.
대신 안내인 숙박비용은
대개 고용인 숙박비용의 절반가량이다.
일본산악회에서 매년
일본어로 발행하는 소책자 안내서에
안내인 조합 소속원 연락처가 적혀 있다.
이곳으로 일본어 편지를 써서 안내인을 예약할 수 있다.
주의할 점은
안내인, 짐꾼, 허드렛일꾼 등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안내인들도 무거운 짐을 함께 진다.
위 세 일꾼 명칭은 구분 없이 사용된다.
‘고리끼’라고 불리는 이들은 사실상
일본 농민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공손한데다가 의지와 기개가 넘친다.
하루의 산행에
즐거움을 선사해 주는 좋은 동료가 되어 준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고용인에게
별다른 불편이 없는지 항상 예의 주시한다.
유럽의 가이드에 비할 바 못 되지만
이들의 등반관련 지식은
일본 하계등반 정도에는 충분하다.
하계가 아니라면
노련한 안내인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련하다 하더라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너무 신뢰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 어떤 결점들도
인간성의 문제로까지 연결되지는 않는다.
다만 능력이 부족한 거라고는 볼 수 있다.
이들은 유달리 잘 걷는 민첩한 인종이다.
이들은 손님들보다 항상 조금 더 날래다.
그런 탓인지 어려운 구간을 만나면
몸으로 헤쳐 나가려고 애를 쓰지만
반면 등반기술을 익혀 사용하려고는 들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등반기술 습득 없이도
일반적으로 쉽게 오를 수 있는 전형적인
일본 산악지형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실제 어려운 구간에서
로프를 확보용으로 쓸 수도 있다.
암벽등반에서 두 등반자가
로프로 서로를 묶고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인원의 팀에서
로프를 계속 사용하며 전진하는 방식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즉 이들은 대개
무리 없이 능란하게 등반에 임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비 하계 등반에 큰 약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 등반대 전체가 로프로
서로 연결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경우에
나는 가끔
로프 연결 없는 등반을 선호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등반대원 각자가 자연스럽게
혹은 배워서 습득한 등반능력을 믿었고
따라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로프 사용에도 편하지 않은 이들을
한 줄로 묶는 것보다 더 안전하리라 여겼던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탄탄한 등반경험을 갖추고
스스로 무엇이 부족한지를
잘 아는 외국인 등반가야말로
비 하계의 고난도
등산에 적합하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등반경험이란
안내인 없는 등반을 통한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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