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반설 정여립이 남긴 문장 중에 천하공물설(天下公物設)과 '누구를 섬기던 임금이 아니겠는가'라는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으로 본다면 이것은 그의 모반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사비군이란 말은 그 당시 사회 통념으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는 400년 전에 군신강상론을 타파하려 한 것이니 여립이 혁명성을 지닌 사상가라는 점은 분명하다. 목자(木子= 李씨) 망하고 존읍(尊邑= 鄭씨)은 흥한다. 요동에서 바라보니 동쪽 나라에 왕기가 있어 나와 보니 전라도 땅 남문 밖에서 뻗었다. 정팔룡이라는 신기로운 용맹 있는 사람이 곧 임금이 될 것인데 머지않아 군사를 일으킬 것이다. 존읍(尊邑= 鄭씨)은 그를 가리키고 그의 어릴 때 이름이 팔룡이며, 그의 출생지는 남문 밖이다. 정여립이 이 낭설을 퍼뜨려 믿게 한 것은 곧 반역·모역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압수된 '제천무'에서는 선조의 실덕을 열거하였는데 이를 <연려실기술>에서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역적들의 문서 중에 정여립이 하늘에 제사 하는 제문이 일곱 장이나 나왔는데, 임금의 죄악을 말함에 있어서 특히 흉하고 참혹하였다." 그리고 여립은 왕조의 운수가 다했음을 논하고 천명의 이행을 기도하였다 한다. 선조 밑에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판단하고 혁명을 은밀히 생각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옥사에서 쓰러진 동인 명사들이 선조에게 등을 돌리는 자세에 있어 어느 정도의 공통점은 있으나 역모와는 관계가 없다고 보여진다. 반역의 땅? 전라도 정여립은 동인과 서인의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인의 미움을 얻은 결과 무고하게 희생된 인물로 기축옥사의 장본인이 되어 동인의 정치권에 큰 타격을 주었다. 나아가 정여립 사건은 전라도는 반역향이라는 한 서린 공식에 결정적 빌미를 제공하여 훗날까지 호남 인재의 등용에 못을 박게 한 정치 사회적 대사변이다. 같은 전라도 출신인 송강 정철로 하여금 동향 사람인 정여립을 역적으로 몰아 전라도를 백안시하게 되어 지역차별의 분위기를 조성하게 된다. 일찍이 고려 태조가 남긴 훈요십조 가운데 제 8조를 보면 차령산맥과 금강 이남의 사람들은 반역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 지역 출신들을 등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후백제 견훤의 세력 토대가 되었던 지방이므로 그 잔존 세력들이 고려 왕조에 대해서 행할지도 모를 반항을 미리 막아보려는 조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백제의 후예들인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나라를 잃은 백제인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재건하려 했다면 이는 후세의 귀감으로 떠받들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는 정여립이라는 한 인물의 정치적 성향을 문제 삼아 정확한 사실 규명도 없이 전라도를 반역향으로 규정하여 두고두고 차별을 하였으니 이렇듯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기나긴 호남 차별의 왜곡된 역사를 규명하고 그러한 잘못을 다시는 범하지 않기 위해서도 정여립 사건에 대한 연구와 평가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여립의 정치 사상의 합리성에 대해서도 반드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꺽여진 야망, 정여립의 한(恨) '정여립이 상두산에서 활을 쏘면 김제 황산까지 날아갔다고 하는데 정여립의 용마가 이 화살보다 먼저 황산에 도착했다 한다. 그런데 어느 날은 용마가 이 화살을 놓쳤는데 정여립이 화가 나서 용마의 목을 쳐버렸다. 후에 이것을 불쌍하게 여긴 정여립이 다시 용마를 선산 앞에 묻었다고 한다.' 정여립의 용마에 관한 전설은 여립의 진보적인 사상이 시기상조였음을 의미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살아있는 정여립 장군
정여립의 모반사건은
천여 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내는 옥사를 불러 일으켰고
결과적으로 전라도를 반역향으로 전락시켜
차별 받는 설움을 겪게 하는 상처를 남겼다
.
그러나
현재 학계와 언론계에서
정여립 모반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을 다각화하고 있으며
호남을 중심으로
'정여립 선생 추모 사업회'가 발족단계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정여립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살펴본 것은
단지 정여립의
한 맺힌 누명을 풀어주는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치 사상과
혁명성을 정당하게 평가받기 위함인 것이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이 곳 전라도는 반역이 싹튼 땅이 아님을 알리며
그러한 이유로 차등 받아야 하는
전라도의 처우 문제는
우리들 스스로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
정여립의 한,
호남의 한을 재조명함으로써
정여립과 함께
진정 살아 숨쉬는 전라도를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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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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