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관아지(楊州官衙址)
양주의 읍치는 한양의 중심부에 있었으나
조선 태조 3년 조선의 도읍을 송도에서 한양으로 옮기면서
지금의 서울광진구일대인 대동촌으로 옮겼다가
다시 견주의 옛터인 지금의 양주시 고읍동으로 옮긴 후
중종1년(1506) 지금의 유양리로 옮기게 되었다.
현재 복원한 관아가 위치한 유양리 507번지는
매학당이 있던 곳으로 매학당은 목사의 정청이었다.
매학당은 외동헌과 내동헌이 있었는데 20여 칸의 규모였다.
외동헌은 목사가 정무를 보던 곳이고
내동헌은 그 가족이 생활하던 곳이다.
동헌은 한식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의 정면 7칸, 측면 3칸의 목조건물이다.
계단을 올라 화강석 기단위에 주초를 두고 방형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위 두공은 간결한 모양을 두 겹으로 얹인 건물이다.
동헌의 오른편으로 각지에 흩어져 있던
전임 양주목사들의 송덕비들을 모아 놓았다.
모두 18기인데 이중 17기는 송덕비이고,
나머지 1기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유허비이다.
이 비들의 비좌는 화강암으로 새로 만든 것들이다.
양주향교(楊州鄕校)
1401년(태종 1)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6·25 때 폐허화되었던 것을 1959년에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서무·내삼문·외삼문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 송조2현,
우리 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5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이 향교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교 1명과 장의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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