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대(彈琴臺)
탄금대는
3대 악성 중 하나인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탄금대란
명칭이 붙은 곳이며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왜적과 싸우다가
목숨을
바친 곳이기도 하다.
신라 진흥왕 때
가야국의 우륵이라는 악사는
조국의 멸망 후에
이곳에 강제로 이주당한 후
당시 우륵은
탄금대 절벽바위를 주거지로 삼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가야금을 타면서 제자들에게
노래와 가야금,
춤을 가르쳤다는 곳이다.
탄금대는
대문산(견문산)이라 부르던 야산인데,
남한강이
절벽을 따라 휘감아 돌고
울창한 송림이
우거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대(臺)에서
조망되는 남한강과 계명산,
남산 및 충주
시지가와 넓은 평야지대가
그림같이 펼쳐져
절경을 자아내고 있는 곳이며,
2008년에
명승 제42호로 지정되었다.

탄금대 안내도




"탄금대 사연" 노래비


노래비 건립 내용






야외음악당









충혼탑






신립장군과 팔천고혼위령탑









권태응의 감자꽃 노래비

해발 106.9m 대문산(견문산) 정상




탄금대토성 학술 조사 중

탄금대기


앞면

뒷면
탄금정(彈琴亭)
탄금정은
2층 누각형태로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정자로
본래
충주관아 내 연못에
천운정이란
정자가 있던 것을
사직산에
지건되었다가,
1955년 다시
이 자리로 이건 되었다.

탄금정



열두대
임진왜란때
팔도 도순변사 신립장군이
47세를 일기로
애석하게 순절한 곳이다.
열두대란
신립장군이
임진왜란 탄금대 전투때
뜨거워진 활시위를
남한강 강물에 식히려고
강아래를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신립장군순국지지
선조25년(1592년)
4월28일
팔도도순변사 신 립
장군이 종사관 김여물
과 더불어 조총포화
십수만 왜적을 창검궁
시의 팔천군사로 맞아
싸우다가 전세불리하자
김공과 함께 적진에 돌
입 수십적을 격살한뒤
탄금대 이곳 열두대
에서 향년 사십칠세를
일기로 애석하게 위국
순절 하시다.
※ 비석의 세로글자따라 옮김




남한강 풍경





우륵선생의 탄금대



대흥사



애기똥풀 군락

우륵선생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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