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瞻星臺)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약 9.5m.
첨성대가 위치한 곳은
옛날에는
경주부 남쪽 월남리라고 하였고,
계림의 북방 약 150∼200m,
내물왕릉 동북방 약 300m 되는 곳이다.
첨성대는
삼국유사 紀異 권2의 別記에
“이 王代에 돌을 다듬어서
첨성대를 쌓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신라 선덕여왕 때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같은 책 王曆 제1에
신라 제17대 내물마립간 이야기 끝에
“능은 占星臺 서남에 있다.”
라는 기사가 있는데
현재의 내물왕릉과
첨성대의 위치 관계와 잘 부합된다.
이 기록에서
첨성대가 별명으로
점성대라고
불렸던 것을 알 수 있다.
계림(鷄林)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7,300㎡이다.
물푸레나무·홰나무·휘추리나무·
단풍나무 등의 고목이 울창하며,
신라 王姓인 김씨의 시조
金閼智의 탄강 전설이 있는 숲이다.
삼국유사에
'60년 8월 4일 밤에 호공이
반월성 서쪽 마을을 지나가는데,
마을 옆 숲이
황금 궤에서 나오는 광명으로 가득 차고
흰 닭 한 마리가 울고 있어
탈해왕에게 고하였다.
왕이 즉시
이 숲으로 가 궤를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있어
알지라 이름하였고,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金)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계림이라는 명칭은
숲에서 닭이 울었다는 데서 연유되었으며,
후에 국명으로도 쓰였다.
신라의 신성한 숲이라 하여
현재까지 보존되어 오며,
100여 주의 고목과
l803년에 세운 비가 있다.
월성(月城)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재성(在城)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사기에 보면
주위가 1,023보(步)이며,
자연적인 언덕 위에
반월형으로 흙과 돌을 혼용하여 쌓았고,
여기에 신라 역대왕들의
궁성이 있다고 기록되었다.
동경잡기에는
290년(유례왕 7) 큰 홍수로
월성이 무너져
이듬해 보수하였으며,
487년(소지왕 9)에
다시 이곳으로 옮겼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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