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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화재관람료, 부처님은 어찌 생각할까?

장 불재 2022. 4. 13. 14:21

 

한국의 문화재관람료,

부처님은 어찌 생각할까?

 글 사진 · 이규태( 등산안접협회 회장)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낸 문화재관람료는 얼마나 될까?

50만원은 넘을 거 같은데, 100만원도 될까?

 

산을 찾는 우리나라 등산객이 연 300만 정도라면 그동안 낸 소소한 관람료를 합친다면...?’

계산이 잘 안 나온다.

 

산에 가면서 관람료 내고 들어선 사찰의 문화재를 떠올리려니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오히려 관람료 없는 작은 사찰에서 느꼈던 소박한 기억은 새롭기만 하다. 

지난가을 아내와 함께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용문사를 찾았다. 몇 년 전 홀로 갔을 때 단풍이 고왔던 추억이 있어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걷기 힘들다는 아내와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절이 어디 있느냐?” 묻는다. “여기서 15분 정도 올라가면 천 년 된 은행나무도 있고 그 위에 절이 있는데 가는 길 단풍이 곱다.”고 끌었다.

 

아내는 “여기서 본 단풍으로 충분하고 걷기도 힘드니 돌아가자.”고 한다. 가는 데까지 가다가 되돌아오자면서 표를 구매했다. 결국 5분 정도 올라가다 아내가 힘들어해서 은행나무도 대웅전도 보여주지 못했다.

 규제 보상의 일환으로 시작된 관람료 징수

등산객들에게 문화재관람료 명목으로 일종의 ‘통과료’를 받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화재가 있는 사찰에서 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는 근거는 문화재관리법 제49조인데 내용은 이렇다.      

 
① 국가지정문화재의 소유자는 그 문화재를 공개하는 경우 관람자로부터 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다. 관리단체가 (별도로) 지정된 경우에는 관리단체가 징수권자가 된다.(개정 2015)

② 관람료는 해당 문화재의 소유자 또는 관리단체가 정한다.(개정 2015)

③ 국가 또는 지자체는 문화체육관광부령이나 조례로 지역주민 등에 대하여 관람료를 감면할 수 있다.(신설 2014)

 문화재관람료 갈등문제는 1962년 문화재관리법 제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문화재 도굴, 해외 밀반출이 기승을 부렸다. 정부는 법을 제정하여 ‘사유재산 문화재’에 대한 이동제한, 원형보존과 현상변경을 법으로 규제하였다.

 

이에 따라 사찰의 경우 건축물, 불상, 탱화, 탑,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지정된 문화재에 대한 여러 신고 의무가 발생했다.

 

이러한 규제에 대한 보상의 일환으로 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도록 하여 해인사를 필두로 사찰들은 관람료를 징수하기 시작했다. 

1967년 공원법(후일 자연공원법과 도시공원법으로 분리됨)이 제정되면서 사찰 소유지 중 상당 부분이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사유지인 광대한 사찰림이 적절한 보상 조치 없이 국립공원에 편입되자 불교계의 반발이 시작되었다. 사찰 소유 산림지 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넘는다.

 

소유하게 된 과정이나 현실은 역사적으로 한국적인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여간 당시 불교계는 사유지가 국립공원으로 편입당한 데에 따른 일종의 보상을 요구했다.  

국립공원입장료는 외국에서도 징수하는 곳이 많다. 나라에 따라 다르겠으나 대개 주차장과 공원 내 역사, 문화에 관한 정보이용료의 성격이 짙다.

 

우리나라처럼 단순 등산 목적으로 국립공원에 입장하는 경우와는 성격이 다른 경우가 많다. 우리처럼 사유지가 많은 사례도 드물다. 

 

 

국립공원입장료 폐지에 따른 관람료 인상

사찰의 보상 요구에 환경부는 국립공원입장료와 문화재관람료를 통합징수하여 일부를 사찰에 건네주며 갈등을 무마했다. 그런데 이 통합징수는 법적근거가 없는 미봉책이었다.

 

사회단체와 등산객들은 통합징수의 부당성에 반발하여 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했다. 법원은 서로 다른 성격의 입장료와 관람료를 분리징수 하도록 권고했다.  

2001년 재판부 판결문은 “국립공원입장료와 문화재관람료는 그 법적근거, 입법취지, 기본성격, 그 대가인 향유이익 등이 서로 상이한 점에서 통합징수는 부당하고 별도 징수가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통합징수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분명히 했다. 

2007년 환경부는 이러한 주장을 인정하여 국립공원입장료를 폐지하였고 등산객들은 이를 환영했다. 당시 환경부는 “국립공원을 국민에게 돌려드린다”면서 생색을 냈고, 문화재관람료는 사찰이 직접 징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찰들은 그동안 국립공원 측에서 통합징수 한 돈을 받기만 했는데 직접 징수하는 불편이 생기자 관람료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관람료 인상은 국립공원만이 아니라 도립공원에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혼란에 편승하여 일부 사찰에서는 불법적인 행위들이 일어났다.

 

문화재를 직접 보여주어야 하나 모형품을 전시하기도 하고, 관람료 징수장소를 사찰에서 한참 아래인 버스정류장 인근으로 옮겨 등산객들의 문화재관람 의사에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징수했다.

 

어떤 사찰에서는 징수 편의와 많은 관람료를 걷기 위해 문화재가 있는 위치보다 한참 아래 ‘자동차도로‘에 매표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2009년 한 사찰의 문화재관람료 징수와 관련해 의미 있는 판결이 있었다. “등산로가 반드시 사찰을 거쳐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찰이 보유한 문화재가 사찰 일부 건물인 대웅전 내부에 있는 점,

 

대웅전은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을 통과하고도 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사실 등을 감안할 때 등산객들로부터 일률적으로 관람료를 징수하는 것은 법률상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또 “관람료를 징수하기 위한 매표소의 위치를 사찰입구(문화재에 가까운 장소)로 옮기거나, 문화재를 관람하려는 등산객과 그렇지 않은 등산객을 구별하여 징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 판결은 보편타당한 사회적 통념을 반영한 것이었지만 불교계는 마이동풍이었다. 관람료 갈등문제는 여러 번 언론 등에서 사회이슈화 되었다.

 

불교계는 현행법상 합법이고 통과료를 받지 않으면 사찰재정에 어려움이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사찰재정에 어려움이 있다는 주장도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의 경우이지, 문화재가 없는 보통의 대다수 사찰에는 해당되지도 않는다. 

 문화재관람 등산객과 그렇지 않은 등산객 구별해야

불교계는 등산객들이 건물 내의 문화재를 볼 수도 없고, 또 멀리서 지붕만 보이는 곳도 있고, 더욱이 그 문화재를 관람할 의사가 없이 산을 오르기 위해 ‘길’을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만족할 만한 보상이 없다는 것이다. 일부 사찰은 지역주민에 한하여 관람료를 면제하기도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찾아온 등산객에 대한 역차별일 수도 있고, 문제는 사찰 인근에 거주하느냐가 아니고 문화재를 관람하려는 의사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2018년 현응스님은 “사회적 비난으로 인한 사찰과 불교위상 실추로, 얻는 수익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관람료 수입보다 신도의 보시에 의존해야 사찰이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불교계 내부의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2018.7.9.불교신문). 그러면서도 문화재 보수와 관리, 승려 교육과 수행 등을 위해서 관람료는 꼭 필요하고 등산객이 사찰을 통과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재를 관람하므로 합법적이라면서 관람료를 제약하려면 상응하는 보상을 하라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그동안 정부는 문화재유지비를 별도로 지급하고 있고 템플스테이 등으로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각종 법령을 개정했다.

 

환경부가 국립공원 내에서 등산 목적의 야영, 취사를 엄격히 규제하고 개인의 사유시설물까지 강제철거 하는 것에 비하면 템플스테이를 허가하는 것은 일종의 특혜에 가까운 것이다.

 

국립공원 지역 템플스테이는 점차 관광상품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관람료 갈등의 본질은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법원의 판단은 단순 통과자와 문화재관람 목적의 방문객을 구분하라고 것인데, 이를 사찰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법령을 개정한다고 여러 번 거론되었지만 결론이 없다. 법 개정 전이라도 사찰 측에서 등산객 단순 통과로를 구분하기만 하면 된다. 사찰이 움직이지 않으면 조례를 개정하여 문화재관리법 49조 ③항에 의거 면제해도 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道=길」 일진데 ‘길’을 지나는 중생들에게 특정한 길로만 가도록 울타리를 치고 ‘통과료’를 받는 문제로 중생과 갈등하면서 양보가 없다. 애매한 등산객만 한숨짓는다. 부처님이 보고 계신다면 한 말씀 듣고 싶다.  

 


출처 : 사람과산(http://www.sans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