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석성(金石城 : 가네이시조)
이즈하라에는 청수산성이라 불리는 외성이 있고,
금석성이라 불리는 내성이 있었다.
1669년 ‘소 요시자네’가 건축했다는
금석성의 성벽은 현재 대부분 훼손되었으나,
고려문에서 체육관으로 이어지는
길가의 성벽은 비교적 잘 보존된 편이다.
금석성 안에 있는 지키바라(棧原)가
역대 대마도주들의 거처였으니
이곳이 대마도의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다고 볼 수 있다.
덕혜옹주결혼봉축기념비(德惠翁主結婚奉祝記念碑)
덕혜옹주는 고종과 양귀인 사이에 1912년에 태어났다.
덕혜옹주는 어릴 때부터 고종의 사랑을 듬뿍 받는 귀여운 옹주였다.
그러나 1925년 4월, 일본은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시켜야 한다'는 미명하에
사실상 덕혜옹주를 일본으로 끌고 간다.
그 후 1931년 5월 36대 쓰시마 마지막 번주의 아들인
소 타케유키(宗武志)에게 시집을 갔으나,
정신이 이상하다 하여 이혼을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남편의 학대가 아주 심했다고도 한다.
슬하에 외동딸(마사에,正恵)를 두었으나,
그녀 역시 삶을 비관하여 투신 자살,
혹은 살해 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덕혜옹주는 이로 인해 더욱 더 깊은 심신의 상처를 입었고
정신질환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러한 덕혜옹주는 천신만고 끝에
해방이후 귀국하여 고국의 땅을 밟았다.
그러나 정신질환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고,
결국 1989년 창경궁낙선재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홍유릉에 묻혔다.
대마 역사민속 자료관
1978년 12월에 개관한 대마 역사민속 자료관은
도내의 문화재, 고고 역사자료, 민속자료, 소(宗)家 문고 등 귀중품을 전시하고 있다.
자료관 뜰에는 조선시대 열두 차례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를 기념하는 '조선통신사지비(朝鮮通信使之碑)’가 세워져 있고,
그 앞에는 통신사 행력을 맞이하기 위해 세웠던 솟을대문이 서 있다.
자료관에는 고려판 대장경과, 대반야경, 훈몽자회등
한반도와의 교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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