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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이 학문의 꽃을 피운 다산초당(茶山草堂) 01 : 전남 강진군(2009.03.14)

장 불재 2014. 2. 10. 17:40

 

 

 다산초당(茶山草堂) 

 

정면 5, 측면 2.

조선 후기의 대표적 사상가인 정약용(丁若鏞)

1801(순조 1)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귀양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1808년에 윤규로(尹奎魯)의 산정이던 이 초당으로 처소를 옮겨

1818년 귀양에서 풀릴 때까지 10여 년간 생활하면서,

목민심서등을 저술하고 실학을 집대성함으로써

실학사상의 산실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58년 지역민으로 구성된 다산유적보존회가

무너진 초당을 복건하여 이 해 사적 제107호로 지정받았다.

건물은 도리단층기와집으로

문화재관리국에서 관리하고 있다.

 

1970, 1971, 1975년에 보수공사를 하였으며,

茶山艸堂이라는 현판은 김정희(金正喜)의 글씨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정석(丁石약천(藥泉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다조(茶竈)

다산의 유적이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