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필의 미래창
19세기 중반 이후 여성복 디자인 분석
가장 뚜렷한 흐름은 치마 길이의 변화

돌고 도는 물레방아처럼 유행도 돌고 돈다고들 말한다.
실제로 패션업계에선 20년마다 유행이 반복된다는 20년 주기 법칙이 그럴싸하게 통용된다.
어린 시절을 지나 과거를 그리워할 때까지의 간격이 대략 20년이라는 경험칙에 근거하는 믿음이다.
실제로 미 해군 바지에서 유래해 1970년대 히피 문화의 확산과 함께 유행했던 나팔바지(벨보텀)는 1990년대에 부츠컷, 2020년대에 플레어 팬츠란 이름으로 돌아와 인기를 끌었다.
요즘엔 2000년대 초반(Y2K) 유행했던 패션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광택이 있고 부드러운 소재의 벨벳 트레이닝복, 나비 모양의 머리핀, 골반에 걸쳐 입는 로우라이즈 청바지가 그런 사례다.
21세기엔 소셜 미디어나 패스트패션의 영향으로 유행 주기가 크게 단축됐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패션업계에선 여전히 20년 주기설에 고개를 끄덕인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진이 패션 20년 주기설을 증명하는 수학 모델을 개발해 최근 미국 덴버에서 열린 미국물리학회(APS)의 ‘세계 물리학 서밋’에서 발표했다.
연구진은 1869년부터 2025년까지의 여성 의류 이미지 약 3만7천장을 분석한 결과 유행이 인기를 얻었다가 시들해지고, 다시 유행을 타는 주기적 흐름이 업계에서 알려진 사실과 일치한다는 걸 발견했다.

젊은 세대에겐 복고풍도 새로운 스타일
그런 다음 ‘남들과 다르면서도 대중성을 잃어버려선 안 된다’는 가장 단순한 의류 디자인 발상에 기반을 둔 수학 모델을 구축했다.
디자이너는 어떤 특정 스타일이 너무 흔해지면 그 스타일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입지 않으려 할 만큼 너무 벗어나려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최적의 차별성’이라고 부르는 개념과 같은 맥락이다.
최적의 차별성이란 집단에 소속되기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만의 개성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심리적 경향을 뜻한다.
분석 결과 패션은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해가지만, 스타일은 20년 주기로 정점을 찍는 흐름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에 따르면 친숙하면서도 색다른 스타일을 찾다 보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디자인에 끌리는 경우가 있다.
특히 패션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에게서 이런 경향을 두드러지게 볼 수 있다.
흘러간 과거의 스타일이더라도 젊은 세대는 직접 경험하지 못한 시대의 스타일이어서 새롭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엔 다양성 커져
그러나 이런 흐름은 1980년대부터는 상대적으로 복잡해졌다.
이때부터는 다양한 길이의 스커트가 동시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연구진은 이는 패션 트렌드가 세분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하나의 지배적인 흐름보다는 다양한 틈새시장이 생겨나면서 패션의 다양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엠마 자이델라 산타페연구소 연구원은 “과거엔 짧은 드레스와 긴 드레스, 두 가지 선택지만 있었지만,
최근엔 아주 짧은 드레스, 바닥까지 내려오는 롱 드레스, 미디 드레스 등으로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지고 다양해졌다”며 “시간이 흐르면서 스타일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패션의 주기설을 뒷받침할 뿐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회에 어떻게 확산하는지를 설명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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