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5일
베이스점프용 낙하산을 메고 단독등반을 하는 딘 포터는
영화 반란의 계곡의 한 장면. 베이스점프를 하는 딘 포터.
1950년대 풍요와 안전이
최우선의 가치로 자리잡았던 미국 사회에서
불안한 자유와 도전의 상징과도 같았던 요세미티 계곡은
조금은 ‘미친’ 클라이머들로 인해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영화에서는
그들을 ‘반란’이라는 단어로 묶었지만
실상 요세미티의 클라이머들은
누구에게도 대들거나 남을 해하지 않았고
그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과는 다른 삶의 길을 선택했을 뿐이다.
반란의 대상은 결국
요세미티 계곡 밖의 모든 가치관이었을 뿐이지,
그것이 반란이어서 틀린 것은 아니었다.
북한산 백운산장
영화상영회를 하던 날 오전,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북한산 백운산장에 찾아왔다.
2019년 5월 23일
법원에서 피고 패소판결한
소유권이전등기소송 절차를 통보하기 위해서였다.
1957년부터 산장에서 살아온
고 이영구 씨의 부인 김금자 씨는
남편의 3년 상을 마치고
정리할 테니 4년만 말미를 주면
공단에 모든 것을 넘기겠다고 하였고,
이에 대해 공단은 수긍하며 그동안 2층 공간을
구조대가 사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공단에서
산장을 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에 대해서도 추진하겠다하니
산악인들의 참여가 함께 한다면
백운산장의 영원한 보전을 위해
앞으로 협의해나갈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저씨 산사람들이 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니 협박에 아.
"기부채납 약정 당시의 억울함을 기록한 산장지기 고 이영구 씨가 쓴 일기.
이 일기는 법원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
약정의 부당함을 입증하기엔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하루 만에 공단의 말이 바뀌었다.
26일 다시 산장을 찾아온 공단 직원은 김금자 씨에게
곧바로 산장을 비워준다는 내용에 서명을 하라고 요구했다.
그렇게는 못 한다며 펄펄 뛰는 김씨에게 직원은
“공단 내부 결정이 그렇게 났다”는 말 뿐이었다.
김금자 씨와 그의 아들 이인덕(백인) 씨는
북한산사무소 직원을 통해 권경업 이사장 면담을 요청해놓은 상태이며,
“차라리 강제집행을 당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백운산장 사진전을 위해 액자를 나르고 있는 고 이건 씨(오른쪽)와 기자. 사진 임채욱 페이스북
산장을 떠난 이들은 쓸쓸하게 세상을 달리했다.
2006년 도봉산 보문산장이 헐린 1년 뒤
산장지기 배용복 씨가,
2011년 지리산 피아골산장을 떠난 뒤
2013년 ‘지리산 털보’ 함태식 씨가,
그리고 이제 어디에 있는 지조차 궁금한
설악산 수렴동 지킴이 이경수 씨…
평화롭던 백운산장에
어느 날 내용증명이 날아들고 법원의 출석요구서가 송달되고…
비극으로 사라진 고 이건 씨와
그를 친아들처럼 품어 키웠던 산장지기 이영구 씨의 미소가 떠오른다.
‘반란’이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던,
그저 자연의 한 조각 같았던 선한 눈망울들.
자, 이제 국가와 그 권력을 위임받은 국립공원공단은
남편과 아들을 잃은 여든 노인이 거의 평생을 살아온
산속의 작은 집에 붉은 압류 딱지를 붙이고
제복 입은 사람들을 동원해 강제집행을 할 일만 남았다.
그 집은 국유재산법을 위반하고
법원의 명령에 불복하였으며
여전히 영수증도 발행하지 않고
생수와 컵라면을 팔아 돈을 벌어들이는
무법천지, 반란의 백운산장이니까.
출처 : 마운틴저널(http://www.mountain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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