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법정탐방로에 대한 공론화의 필요성
특별기고 _한국산악회 제2회 학술대회
-다음 내용은 한국산악학회 제2회 학술대회, 주제인 「백두대간, 맥을 잇다.」의 기획세션 인 「백두대간과 등산」의 발표와 토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지난 6월말 한국산악학회 제 2회 학술대회에서 중요 기획 논의 과제로 발표된 백두대간의 비법정 탐방로와 등산로의 문제는 국립공원 관리 당국과 등산인들 간의 백두대간 상의 비법정 탐방로에 대한 관리의 모순과 갈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하여 시도되었다.
이 문제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1990년대 초 국립공원 내 등산로의 휴식년제 실시 때부터 야기된 문제로 사전조사도 없이 공원지역 보존을 위한 조치라는 발표만으로 기존 등산로가 폐쇄되어, 오히려 개방된 등산로는 많은 등산객들이 몰려 답압에 의한 등산로 훼손이 크게 일어나 문제가 되었었다.
그 후 등산로가 탐방로 개념으로 변경되면서 휴식년제가 실시되었던 등산로는 자연공원법 28조에 의해 대부분 비법정탐방로로 변경되었다.
자연공원법 28조에 따르면 자연생태계와 자연경관 등 공원보호를 위한 경우나 훼손된 자연의 회복을 위한 경우, 공원의 체계적 보전관리가 필요할 경우나 공익상 필요할 경우 탐방을 제한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비법정탐방로에 출입했다가 적발되면 과태료로 1차 적발시 10만원, 2차 30만원, 3차 50만원을 부과 받는다. 백두대간 상의 비법정탐방로는 약 80km로,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 중 비법정탐방로를 우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재까지 백두대간을 종주한 사람들은 6만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중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이 국립공원의 비법정탐방로를 불법으로 종주하였고, 국립공원관리당국은 이들을 범법자로 보고 있으며, 앞으로 백두대간을 종주할 등산인 들을 잠재적 범법자로 보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2020년 한국산악회, 한국대학산악연맹, 서울시산악연맹, 한국산서회, 엄홍길휴면재단 등의 대표들이 모여 국립공원비법정탐방로 대책위원회(위원장 한인석)를 구성하여 설악산 비법정탐방로 현장실태를 조사하고 세미나를 개최하며, 국립공원공단과 대화를 시도하였으나 국립공원공단은 이에 대한 논의를 거부하고 있다.
비법정탐방로에 대한 논의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거부입장
이번 학술대회에도 국립공원공단에 토론자로 참석을 요청하였으나 방향이 정리되지 않아 참석하기 어렵다는 회신만 왔다.
국립공원 정책을 연구하는 조우 교수(상지대학교)는 「산림구역에서 탐방로와 등산로의 활용」 발표에서 국립공원 내 모든 길은 자연공원법 시행령에 따라 탐방로로 지정되어 있고, 탐방객은 탐방로를 이용하면서 자연, 경관, 문화를 체험 탐구하면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비법정탐방로는 탐방로로 지정되지 않은 공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자연공원법에 등산로나 등산객에 대한 정의가 없다. 심지어 순수한 등산을 위한 수직등산로나 종주등산로가 수직탐방로나 종주탐방로로 정의되어 있다.
오랫동안 국립공원 정책을 연구한 오구균 교수(호남대)는 탐방로를 서비스도로, 자연탐방로(자연산책로), 등산로, 종주등산로, 자연관찰로 등으로 세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권태호와 오구균, 2001).
즉 등산로는 산록부나 산 정상에 이르는 순수 보행자만이 이용할 수 있는 등산 전용탐방로라고 정의하였다. 산림청의 숲길 조성 관리 기본 계획의 성과(2022)에 의하면 전국 4만2천km의 숲길 중 3만2천여km가 등산로이고, 탐방로는 850km이다.
전국의 숲길 중 76%가 등산로인데 유독 국립공원에만 등산로가 없다. 국립공원 내 탐방객과 탐방로만 있다 보니 탐방객이 탐방로에서 사고를 당하였을 경우 국립공원관리 당국에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국립공원공단은 법적인 문제를 최소화 하고자 탐방로에 안전시설을 과도하게 설치하여 자연을 훼손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이런 편의 시설 확충으로 탐방객의 대량 유입은 탐방로의 훼손을 유도한다.
조우 교수에 의하면 국립공원 내 탐방로 훼손은 259km에 이르고, 이 중 128km가 탐방객에 의한 나지화가 진행되어 측면이 붕괴되는 등 단기간 내 복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립공원 내 비개방구간도 지속적으로 훼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속리산, 월악산 등의 비법정탐방로도 모집산악회 및 종주산행객들에 의한 훼손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조우 교수는 국립공원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하여 비법정탐방로의 개방보다는 생태환경보전을 위한 복원, 복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토론을 맡은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소장은 비법정탐방로 지정이 생태적 우수성 보다는 국립공원공단이 사전 조사 없이 관리 편의성 우선으로 지정하였기 때문에 비법정탐방로가 법정탐방로 보다 생태적으로 우수하다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생태적 훼손이 클 수 있다고 하였다.
비법정탐방로는 주로 야간에 산행을 하기 때문에 안전에도 큰 문제이며, 생태적으로도 보호할 방법이 없으며, 훼손되어도 관리 복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즉 비법정 탐방로의 원래 지정이 생물다양성 보전 등 우수 생태계 보전이 목적이었으나, 생물다양성 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관리의 부실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비법정탐방로 지정보다는 생태적으로 우수하고 보전해야할 지역은 절대보전지역지정, 또는 특별보전지역 지정이 바람직하고, 이를 우회할 수 있는 탐방로를 설치하거나 보전 지역 내 지정된 탐방로로 공원 안내자에 의해 적정인원이 통과하는 예약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하였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의 오영훈 연구원은 「모순과 갈등의 공간 백두대간」 발표에서 백두대간 국립공원 구간을 관리당국과 등산인 사이에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곳으로 보았다.
종주하려는 등산인들과 관리당국 사이에 심각한 충돌이 상존한다. 백두대간 남한 684km 중 36%인 247km가 국립공원 내에 있고, 이 중 법정 탐방로는 79.9km 이다.
공단과 환경부, 환경단체는 백두대간을 한반도의 핵심 생태축으로 보고 훼손우려로 종주를 반대하고 있다. 반면에 산악단체, 지자체, 지역주민과 산림청은 백두대간 등산이 국민의 권리라는 점을 들어 개방에 찬성하는 편이다.
산악단체와 산림청은 보호와 이용을 조화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사전 예약제나 주민감시제도 등의 도입으로 제한적인 개방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비법정탐방로 지정보다 절대보전지역지정, 특별보전지역지정 등이 바람직
백두대간 종주가 등산인들에게 등산의 의미를 배울 수 있는 필수과정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등산단체들이 백두대간 종주를 매년 실시하고 있다.
이들은 백두대간 종주로 인한 국토 애호 정신 함양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오영훈 연구원은 규제와 갈등의 근본원인에는 산지를 자원으로 보는 시각(산림청)과 공원 내 자연보존이 국립공원공단의 존립 목적이라는 시각의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국립공원 공단은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공원방문자를 탐방객이라는 획일화된 개념으로 관리하려고 한다. 따라서 국립공원공단은 엄격한 관리규칙을 정하고, 이를 어기는 탐방객에게는 벌금을 부과하고, 강력한 규제를 한다.
이에 대해 오영훈 연구원은국립공원 관리 당국이 자연을 국민이 향유할 수 있는 자원으로 보지 않고 있는 문제가 있으며, 이를 이용하는 등산 단체들과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종주 등산인들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하지 않아 오히려 부실한 관리를 하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백두대간 마루금이 핵심생태축이라는 학술적 근거도 없다고 하였다.
이상과 같이 백두대간 국립공원 구간의 비법정탐방로에 대한 갈등 문제는 관리당국과 등산인 사이의 입장 차이로 해소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매년 수천 명이 비법정탐방로를 위험한 방법으로 통과하고 있고, 그것을 관리당국이 완전히 막을 수도 없으며, 그로인한 자연훼손이 일어나고 있다.
우선은 관리당국이 비법정탐방로 구간이 생태적으로 얼마나 우수하여 꼭 막아야하는지를 등산인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하고, 그런 공간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같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은 자연공원법시행령에서 보여 주는 국립공원 내의 모든 길을 탐방로로 규정하고, 공원 방문객을 탐방객으로만 규정하는 획일적 방법은 개선되어야 한다.
탐방로와 탐방객으로만 규정할 시 그에 따른 법적인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국립공원 이용자에는 탐방객도 있고, 일반등산인, 전문등반인도 있으며, 이를 인정해야 합리적인 관리 계획이 세워질 수 있다.
설악산과 같은 험한 자연환경에서 구조 활동은 필요하겠지만 모든 등산 활동을 규제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가?
등산인들 또한 국립공원의 보존 활동을 이해하고 협조하는 게 필요하며, 비법정탐방로 구간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국립공원 관리당국도 규제 일변도의 범법자 양산보다는 합리적인 개선책을 제시하기 위하여 등산계와 함께 이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