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신화부터 호돌이까지.. 두려우면서도 친근한 존재
우리 전통문화 속 '호랑이'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長林) 깊은 골로 대(大)한 짐승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누에머리 흔들며, 전동(화살통) 같은 앞다리, 동아(활과 화살을 꽂는 물건) 같은 뒷발로 양 귀 찌어지고(찢어지고)…” 밴드 이날치가 불러 유명해진 ‘수궁가’ 중 호랑이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호환(虎患) 마마’란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늘 호랑이를 무서워했지만, 그 위풍당당한 풍모는 때론 경외의 대상이기도 했다.
1만2000년 전부터 한반도에 살았다는 호랑이는 단군신화부터 88올림픽 마스코트까지 한국인의 삶과 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선사시대 유적인 울산 반구대암각화에 14마리가 등장하는 것이 호랑이가 표현된 최초의 문화재다. 육당 최남선은 “중국의 용, 인도의 코끼리, 이집트의 사자처럼 조선에서는 신성한 동물의 첫 번째가 호랑이”라고 했다.
동예에서는 신(神)으로 여겨 제사를 지내는 등 산신급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기도 했다. 숱한 산신도에서 산신과 함께 그린 것이 바로 호랑이였다.
공주 동해리 산신제, 금산 천내리 용호석제 등 전국 곳곳에 호랑이 관련 제사가 있다. 호랑이는 액운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호랑이 부적은 바람·물·불에 의한 재난인 삼재(三災)를 쫓는다고 여겨졌고, 단옷날 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머리에 꽂거나 문에 매달아 놓는 애호(艾虎)는 잡귀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설화 속에선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아기였을 때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다거나, 강감찬 장군이 사람으로 둔갑한 호랑이와 바둑을 둬 물리쳤다는 이야기처럼 역사적 인물과 관련한 이야기에 빈번히 나온다. 이야기 속 호랑이는 은혜 갚을 줄 아는 의로운 존재거나 때론 포악하고 어리석어 골탕을 먹는 친근한 동물이기도 했다.
속담에선 ‘호랑이는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말처럼 구차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동물이었고, ‘범 가는 데 바람 간다’는 말처럼 바람과 함께 달리는 날랜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 대단한 호랑이를 잡은 사람은 더욱 대단했는데, ‘범 잡은 포수’라는 속담은 위세가 당당한 인물을 비유하는 말이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