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 상식 | 등반 난이도 구분] “5.10이 뭐죠? 쌈 싸 먹는 건가요?”
“5.10이 뭐죠? 쌈 싸 먹는 건가요?”
결론만 얘기하면 미국식 등반 난이도 구분법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의 선구자격 클라이머인 로열 로빈스Royal Robbins가 고안한 ‘요세미티 10진법 분류체계Yosemite Decimal System’이며, 우리나라에서 암벽 자유등반 난이도를 구분할 때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구분법이다.
1부터 6으로 등급이 나뉘는데 1급은 약간의 경사가 있지만 손을 쓰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루트, 2급은 가끔 손을 짚는 정도의 로프 없이 갈 수 있는 루트, 3급은 손을 자주 사용해서 기어오르는 루트, 4급은 쉬운 클라이밍을 하는 루트로 로프가 종종 사용되는 루트, 5급은 로프와 확보가 필요한 루트이며, 클라이밍 난이도는 5급을 말한다.
5급에서도 5.0에서 5.15까지 난이도가 나뉘는데, 5.0~5.6은 일반인도 안전장비만 있으면 등반 가능한 수준이다. 5.7~5.8은 워킹 암릉산행을 자주한 사람들도 어느 정도의 힘과 기술이 있다면 등반할 수 있는 난이도. 5.9부터는 일정 수준 이상의 등반기술과 힘이 필요하기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연습해야 오를 수 있다.
5.10부터 난이도가 a, b, c, d로 세분화되며 a가 쉽고 뒤로 갈수록 어렵다. 5.10d 다음이 5.11a이다. 5.14급은 상당히 어려운 루트로 한 나라에서도 해낸 이가 적은 프로 수준의 암벽등반가라 할 수 있으며, 5.15는 전 세계 극소수의 암벽등반가만 해낸 극한의 난이도다.
로열 로빈스는 요세미티 등반의 황금시대를 연 선구자이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클라이밍을 거부했으며, 프리클라이밍과 클린클라이밍을 추구해 거벽의 철학자로 불렸다. 1935년생인 그는 만 82세의 나이로 지난 3월 14일 타계했다.
이밖에도 프랑스식과 UIAA국제산악연맹 방식이 통용된다. 요세미티 방식은 한 피치의 자유등반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의 난이도로 산정하는 반면, 유럽에서 주로 쓰이는 프랑스식은 전체적인 어려움을 난이도로 산정했기에 요세미티 체계와 난이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표기는 매우 쉬운 1부터 난이도가 어려울수록 숫자가 증가하는 방식이다. a, b, c와 ‘+’를 첨가해 미세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게 했다. 같은 6a급이라도 6a+가 더 어렵다.
UIAA 체계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위스, 체코, 슬로바키아 등 일부 유럽국가에서 사용된다. 암벽루트는 물론이며, 히말라야의 긴 루트에서도 쓰인다. 로마숫자로 구분하며 가장 쉬운 I부터 숫자가 늘어날수록 어려운 방식이다. UIAA에서 등급 체계 통일을 위해 제안했으나 여전히 지역마다 사용 체계가 다르다.
이밖에도 다른 난이도 체계를 쓰는 나라들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요세미티 방식과 프랑스식, UIAA방식이다.
로프를 사용하지 않고, 비교적 짧은 높이의 바위에서 매트만 깔아 등반하는 볼더링은 암벽등반과 다른 등급 체계를 사용한다. 휴에코V 방식, 프랑스식(퐁텐블로 체계), 길B 방식, 영국기술방식, 루트색상표기 방식, 일본 단큐 방식 6가지가 있다. 이 중 휴에코V 방식과 프랑스 퐁텐블로 체계가 주로 사용된다.
난이도는 사람을 나누는 계급 아냐
우리나라에선 휴에코V 체계가 주로 통용되는데 북미에서 쓰이는 방법으로 존 셔면이 개발했다. V0~V16까지 있으나 핀란드의 날리 후쿠티아블이 최근 V17을 올라 인간 등반의 한계치를 확장해 가고 있다. V0보다 아래, 즉 초보자 문제라는 뜻의 VBBeginner가 있고, V0의 경우 +-를 붙여 좀더 자세히 표기하기도 한다.
유럽에서 주로 쓰이는 프랑스 퐁텐블로 체계는 1부터 8까지의 숫자와 각 숫자별로 a, b, c를 부여하고, 6 이상의 등급은 각 알파벳에 +등급을 부여해 구분한다. 볼더링의 퐁텐블로 체계는 암벽 자유등반의 프랑스식 체계와 표기가 같지만, 표기법만 같을 뿐 실제 난이도는 볼더링이 더 높다. 이렇게 표기법이 같아 헷갈릴 수 있어 볼더링의 알파벳은 대문자로, 자유등반의 알파벳은 소문자로 적기도 한다.
위의 <등반 난이도 비교표>에서는 난이도별로 이해를 위해 구분했지만, 실제로는 표가 정확히 같다고 보긴 어렵다.
반드시 5.11a가 6b, V2, 6a와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볼더링과 자유등반은 등반 형태가 다르고, 같은 자유등반 안에서도 등급체계의 책정 기준이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당 표는 대략적으로 같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자신의 최고 난이도를 조금씩 늘려가는 것은 등반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국내 자연암장을 가면 등반 잘한다는 사람이 자신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을 간혹 볼 수 있다.
난이도를 높이기 위해 흘린 땀과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겠지만, 난이도는 사람을 나누는 계급이 아니다. 등반의 어려움을 구분하는 척도일 뿐이므로, 난이도와 상관없이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