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미터 14좌 완등자
14개의 8천미터급 봉우리들을 모두 오른 사람은 인류의 한계를 진정으로 극복한 위대한 탐험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14좌를 완등한 사람은 총 43명이 있다.
이 분야에서는 살아있는 알피니즘의 역사 그 자체인 이탈리아의 전설적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를 본좌로 꼽는데 이견이 있는 사람은 전혀 없을 것이다. 메스너는 인류 최초로 14좌를 완등한 산악인이다. 그것도 무산소로 완등했고 최초로 알파인 스타일로 8,000미터급 봉우리를 정복했다.
2번째 완등자는 폴란드의 천재 산악인 예지 쿠쿠츠카로 에베레스트를 제외한 전 좌를 무산소로 등정했고, 로체를 제외한 13좌를 모두 신루트로 개척하거나 동계로 등정했다.
14좌 완등자의 국적을 보면
2015년 현재 이탈리아가 7명으로 제일 많고, 대한민국이 6명, 스페인 출신이 5명 반도국의 위엄, 폴란드와 카자흐스탄 출신이 3명, 네팔인 셰르파가 2명이다. 완등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는 케이스는 칸첸중가 등정이 불확실한 오은선(대한민국), 로체 등정이 불확실한 파우스토 데 스테파니(이탈리아), 초오유 등정이 불확실한 알렌 힌크스(영국), 시샤팡마 등정이 불확실한 블라디슬라프 테르쥴[15](우크라이나), 카를로스 파우너(스페인)까지 모두 5명이다. 엄홍길 역시 1993년 시샤팡마 등정 성공 여부가 불확실했으나, 2001년 재등정에 성공하면서 기록이 인정되었다.
특히 대한민국은 또한 현재 인류 최초 16좌 완등자(엄홍길 대장), 14좌 역대 최단기간 완등자(김창호 대장), 인류 최초 14좌+7 대륙 최고봉+남/북극점 도달자(박영석 대장)을 모두 국적자로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등반은 결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미 60년대 전후로 8,000미터 이상의 봉우리는 모두 등정되었고 현대는 상업등반대가 고정 자일을 설치하게 되면서 정상 정복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이 때문에 히말라야에서도 알피니즘이 대두되었는데 한국은 여전히 14좌(등정주의)에만 매달리고 이어서 지금도 여전한 비판거리다.
박영석 대장은 00년 이후 등정주의를 비판하면서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등정하는 등 등로주의로 전환하긴 했는데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 박영석 대장이야말로 14좌 등정 당시 산소통을 5번이나 사용해서 이런 비판을 받게 만든 장본인이다. 박영석 이전의 14좌 달성자 7명 중 라인홀트 메스너, 에라르 로레탕, 훠니토 오이아르자발, 카를로스 카르솔리오[16]등은 무산소로 등정했고 예지 쿠쿠츠카, 크리스토프 비엘리키 등 폴란드 산악인들은 단 1번, 세르지오 마티니는 단 2번만 사용했다. 이 기록은 이후 피오트르 푸스텔닉의 7개 사용에 의해 기록이 깨지기 전까지 최다 사용이었으며 지금도 김재수 씨의 5번과 함께 2번째로 많은 사용량이다.
박영석 대장의 등반은 철저하게 노멀루트로 고정로프와 산소를 사용한 극지법 스타일로 이뤄졌으며 등로주의로 전환했다는 뒤에도 박영석 대장이 개척한 루트들은 고정로프와 산소를 사용하였기에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이미 박영석 대장의 에베레스트 개척 4년 전인 2005년에 미국의 슈퍼알피니스트 스티브 하우스, 빈스 앤더슨이 낭가파르바트 루팔벽 직등루트를 개척하였고, 07년 러시아팀이 캡슐스타일로 K2 서벽을 초등하는 등의 업적을 남긴 상태라, 이미 40여년 전에 초등된 벽에 극지법으로 루트를 남긴다는 것에 산악사적으로 큰 의미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마케팅을 위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크게 알려진 에베레스트에 신루트를 개척하는 것이 목적인 등반이었고 이는 당시까지 꽤나 성공적인 마케팅으로 작용하였다.
이미 시대는 등정주의, 등로주의의 차원이 아니라 ① 팀원의 수, 산소의 사용 여부, 로프의 개수, 루트의 기술적 난이도, 사전 정찰등반 여부까지 체크하는 서구등반가들에 의해 주도된, 황금피켈상으로 대표되는 알파인스타일과 ② 인간이 오를 수 없다고 평가되던 히말라야의 난벽들을 체계적인 조직력으로 오르는 러시아식 캡슐 스타일로 나뉘는 시대이고, 어느 쪽이 높은지 우열을 가리긴 어렵다. 알파인스타일이 기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만 어느 누구도 K2의 서벽을 알파인스타일로 오를 수 없었기 때문에 러시아 팀의 K2 서벽 초등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등로주의는 기본이고 그 가운데서도 방식을 가리는 것이다. 그러나 박영석 대장의 에베레스트 북서벽은 이미 1975년 초등되었다. 1975년 크리스 보닝턴대의 에베레스트 북서벽 루트의 난이도는 박영석 대장의 루트보다 더 어렵고[17] 히말라야 거벽등반의 효시로서 히말라야 거벽의 가능성을 입증한 등반으로 꼽힌다.[18] 실제 산악계에서는 09년 박영석 대장의 에베레스트 신루트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김형일 대장의 스팬틱 신루트 등정이 더 화두였다.
쿠쿠츠카와 비엘리키의 경우 그 업적이 워낙 대단해 산소 사용을 문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쿠쿠츠카는 9개의 신루트와 4개의 동계 초등정, 마칼루 단독등반의 기록을 남겼고 비엘리키는 3번의 신루트, 3번의 동계 초등정, 5번의 단독등반 기록을 남겼다.
한편 엄홍길 대장은 루팔 벽과 로체샤르 남벽을 등정하는 성과를 보였다. 다만 엄홍길 대장도 마찬가지로 산소통을 3번 사용. 이후 김창호 대장이 14좌 무산소에 성공하면서 그럭저럭 체면치레는 하는 중이다.
한국인 완등자는 현재
박영석 대장(2001; 세계 7번째),
엄홍길 대장(2001; 세계 8번째),
한왕용 대장(2003; 세계 11번째),
김재수 대장(2011; 세계 27번째),
김창호 대장(2013; 세계 31번째),
김미곤 대장(2018; 세계 40번째) 이렇게 총 6명이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 산악계는 정상 사냥꾼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우며 한국 산악계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4좌 중 8개밖에 오르지 않은 시모네 모로는 4번의 동계초등 기록을 남겼으며(그것도 전부 2005년부터이며 낭가파르바트 동계 초등은 불과 2016년이다!) 율리스텍의 가셔브룸 2봉, 시샤팡마 남벽, 안나푸르나 남벽 무산소 단독 스피드 등반 등의 기록을 세웠다. 일본의 단독등반가 야마노이 야스시는 초오유 남벽, K2 남남동립을 단독 등반했는데 과연 이들이 14좌를 오르지 않았다고 해서 위대하지 않은가? 과연 이들이 피오트르 푸스텔닉과 같은 인물들에 비해 밑에 있는가?
결국 2019년 니르말 푸르자라는 네팔의 등반가가 불과 189일 만에 14좌를 완등하여 이러한 비판이 현실이 되었다. 산악계 전반에서 큰 논쟁이 뒤따랐으나 라인홀트 메스너는 그의 등반에 대해 니르말 푸르자가 쿠쿠츠카와 같은 영역에 오르고자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하며 그의 관리능력과 체력을 칭찬하였다. 그의 등반은 결국 고산관광에 불과하고 산악사의 업적이라 불릴만한 것은 아니나 80년대부터 재기되었던 14좌 완등에 대한 논쟁을 완전히 끝내버렸다는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90년대부터 시작된 상업등반의 정점이라 할 수 있으며 니르말 푸르자를 기점으로 14좌 완등과 알피니즘은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당장 이 비판은 라인홀트 메스너, 쿠쿠츠카의 최초 14좌 경쟁 당시에도 보이텍 쿠르티카등에 의해 꾸준히 제기되왔다. 메스너는 히말라야에만 7개의 신루트, 쿠쿠츠카는 9개의 신루트와 4개의 동계 초등정을 남겼는데 그럼에도 이들은 정상 사냥꾼이란 비판에 직면했다.
오은선이 한국인 여성 최초 14좌 완등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일단 한국산악연맹 측에서는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외국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며, 인정하는 쪽이 많다고는 하나, 국내에서는 아직도 산빠들에 더해서 국까들과 국빠들도 난입해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 온갖 병림픽이 난무하는 중. 경쟁국(?)인 이탈리아에서도 인정치 않는 목소리가 큰 편이다. 하지만 이 분야 본좌 라인홀트 메스너는 은근히 오은선을 두둔하고 있어서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운 편.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를 참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