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탐방/사찰탐방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부석사(浮石寺) 03 : 경북 영주시(2019.10.15)

장 불재 2019. 10. 21. 15:19












조사당(국보 제19)

 

조사당은

무량수전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산 중턱에 있다.

 

정면 3

측면 1칸 규모의 작은 전각으로

 

측면 쪽으로 약간 비스듬히 진입하여

소박하고 간결한 느낌을 준다.

 

지붕은 맞배 형식으로 간단해 보이지만

넉넉하게 뻗어 나와 결코

작은 건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1916년의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장여 위의 묵서에 의하면

 

조사당은 고려 우왕 3(1377)

원응 국사가 재건한 것이다.

 

조선 성종 21(1490)에 중수하고

성종 24(1493)에 단청하였으며

선조 6(1573)에는 서까래를 수리하였다..





선비화(仙扉花)

 

전설에 의하면

이 나무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중생을 위하여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곳 조사당 처마 밑에 꽂았더니

가지가 돋아나고 잎이 피어 오늘에 이르렀다.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도

항상 푸르게 자라고 있다.

 

일찍이 퇴계 이황 선생이

부석사를 찾아와 이 선비화를 바라보며 시를 짓기도 했다.

 

이름은 골담초라 한다라고 하여

이 나무의 의미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취현암

 

취현암은

조사당 동쪽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1997년도에 복원되어

2002년까지 선원으로 활용되고 있다가

지금은 부석사 산내암자로서 쓰이고 있다.

 

조선시대 사명대사의 수도처로 유명하고

부석사 경내에서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단하각

 

최근세에 지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남도리 맞배집으로 응진전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건물 내부에는 손에 쥐를

들고 있는 작은 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정면에 걸린 현판의 단하

무엇을 뜻하는 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리를 얻기 위하여

목불을 쪼개 땟다는 단하소불의 고사로 유명한

 

중국 육조시대의

단하 천연 선사를 모신 것이라면

선종과 연관이 있는 전각이다.

 

그러기에 도량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선방 근처에 지었는지도 모른다.









응진전

 

무량수전 영역의 북편 위쪽에 떨어져 있다.

자인당과 함께 거의 일렬로 남향하여

일곽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응진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정면 3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집으로

1976년에 번와 보수하였다.

 

이 건물의 공포에서 20세기 초에 유행한

장식적인 익공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재는 내부에 석

고로 만든 석가삼존불과

고졸한 십육나한상이 안치되어 있다.









자인당

 

자인당은

선방의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부석사에서 동쪽으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폐사지에서 옮겨 온 석불을 이곳에 이안했다.

 

자인당은

정면 3측면 2칸의 맞배집이다.

 

공포가 건물 규모에 비하여 너무 크고

측벽에 여러 가지 형태의 옛 부재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후반경에 해체 부재를 재사용하여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실내에는

석조 삼존여래좌상을 모셨는데

 

가운데는 석가여래이고

좌우는 비로자나불(보물 제220)이다.















선묘각

 

선묘각은

무량수전 북서쪽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의상 조사의 창건 설화와 관련된 인물인 선묘를 모신 건물이다.

 

규모도 작고 기단도 없이 초라하여

마치 작은 사찰의 산신각 같은 느낌을 준다.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 규모의 맞배집인데

가구 방식이나 부재를 다듬은 수법으로 보아

최근세의 건물인 듯하다.

 

내부에는 1975년에 그린

선묘의 영정이 걸려있다.

















삼성각

 

칠성독성산신 세 분을 한 곳에 모신 전각으로

무량수전 서쪽 석축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삼성각은 우리나라 재래의 수()‚ ()‚ ()

삼신 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현재의 삼성각은

원래 축화전(祝花殿)이라 불렀는데

영조 때 대비의 원당으로 지은 건물이라 한다.

 

1979년의 부때까지는

원각전(圓角殿)이라 하였고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을 모셨었다.

 

장대석으로

4단 쌓은 기단 위에 원형 초석을 놓고

정면 3측면 2칸 규모의 건물을 세웠는데

지붕은 팔작 형식이다.

 

그리고 기단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다.